진실에 감히 다가갈 수 있을까.
sunny
2024-11-13 23:19
전체공개
오늘의 일상이 내일의 역사가 되는 것이라면 오늘 소소함이, 행복함이, 억울함이, 분노감이, 성취감이 모두 켜켜이 쌓여지는 일이 역사일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이 현실과 맥락과 시대를 반영하고 있음은 어떻게 알아지게 되는 것일까. 이런 소소함과 일상과 나에게 일어난 사고들이 과거의 무엇을 대변하고 설명하고 있는지. 우린 그 진실과, 세밀함을 다 알아내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하루 일 것이다.
오래 전 큰언니가 제주도를 아예 삶의 터로 생각하며 발령을 받아 이주를 했었던 적이 있다. 그 곳의 사람들과 동화되어 사는 삶에 대한 소회를 자주 나누곤 했는데, 많은 말을 삼켰고, 5년을 살다 포기하고 다시 발령을 받아 돌아왔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나에게 제주도는 먼 곳으로 가고 싶어질 때면 자주 훌쩍 떠나갔던 곳인데, 처음의 기억은 그저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즐겁기만 했고, 점점 아지트처럼 여겨질 때에는 일상에 감히 동화되기 어려우나, 그저 그대로 품어주며, 홀로 찬찬히 걸을 때에는 지나가는 곳마다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은 기운이 특별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책 속에 들어가 있을때는 그냥 홀로 찬찬히 걸었던 비자림이 생각났고, 해녀분들과 함께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눈 바닷가 어느 정박지가 생각이 났고, 비바람이 몰아쳐 앞이 보이지 않는 산간 고속도로의 멈출 수 없는 망망한 도로와 가도가도 엉켜버린 넝쿨 밖의 길을 찾을 수 없어 불안했던 곶자왈과 검은 나무토막이 무한했던 언덕 위의 4.3공원이 생각났다. 어디 말할 수 없는 공포의 시간을 넘나들던 그 시절의 사람들과, 그 후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남은 사람들의 알 수 없이 쨍쨍했던 기운과, 더불어 밀려오는 적막과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불안함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났다. 그저 물성으로 느겼던 그 장소의 온도와 습도와 공기를 말이다. 그 섬이 고향인 친구가 그랬다. 3월, 4월이 되면 모든 집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 걸 본다고. 우리집도 그렇다고... 그래서 그날이 되면 모두 힘겨워한다고. 그랬다. 그 이야기가 또 문득 떠올랐다.
책을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맥락없이 눈물이 나왔다. 전 후 없이 그냥 뜨거워지는 느낌. 어느 문장에서는 열이 올랐고, 어느 문장에서는 그냥 눈을 감았다. 육성으로 ‘미친’...이라고 소리내다 잠시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고 다시 앉았다. 차를 한잔 끓였는데 다 마시지 못했다. 그냥 목이 잠겼다.
돌아보니 짧고 굵게 참 요란하게 읽은 책이었던 것 같다.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함과 무거운 마음만이 남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수많은 답답함을 모두 떠올려서 일지도 모른다. 이 하루의 진실이 무엇일지 그걸 이 생애에 다 알고 떠날 수 있는 것일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다음의 이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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