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지 않겠다 말하는 사랑

2411 시즌 - 책 <작별하지 않는다>
대램져
2024-11-15 06:18
전체공개

책이 출간된 해인 2021년에, 제목에 이끌려 구매한 뒤에도 여태껏 읽지 않았다.
모든 책을 처음 접할 때, 이 낯선 글이 이제부터 내게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할지를 문장을 거치며 은연중에 알아내려고 하게 되는 편이다. 서두를 읽고 짐작이 되지 않아 인터넷에 구태여 검색한 뒤에 제주 4.3사건에 대한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구매를 결정한 이유였던 동시에 읽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스스로 종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완독후에는 읽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바로 그것을 위한 읽기 임에도, 겁먹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죽은사람을 본 적이 없다. 죽음을 접한다 하더라도, 온기 가득한 생전의 모습으로만 그를 기억할 뿐이다. 어릴 때 부터, 주변 웃어른들은 내가 충격을 먹을것이라는 이유로 장례식에서 염한 모습을 절대 보지 못하게 하셨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나는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법한 미디어를 보는 것을 회피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잔인한 장면은 보면서도, 차마 실제 어떤 현장이라던지 오늘날의 전시에 처한 국가를 담은 영상들은 똑바로 장면을 눈에 담지는 않으려고 하게 된다. 내 마음이 아플까봐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그 날의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똑바로 마주하지는 못해도 그들의 고통을 머리로 알고 생각하면 된다고 여기고 싶어지곤 한다. 그런데 동시에, 제대로 봐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늘어가기도 한다. 막연히 그렇다. 내가 사람으로 살면서, 어떤 사람이 다른 이들에 의해 저항도 못하며 다치고 죽는다는 사실을 똑바로 봐야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느낀다. 어디선가 솟아오르는 이 질문에 혼란스럽다. 그 혼란이 피해자들, 사상자들, 생존자들, 유가족들, 그 후손들을 보는 시선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참 이 책은 모든 것을 타인의 시선으로 좇고, 타인의 말로부터 듣는다.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그 말 못할 고문 당한 것보다...... 억울한 징역 산 것보다 그 여자 목소리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 때 줄 맞춰 걷던 천 명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 강보를 돌아보던 것도.

고통이라 하면, 그것은 겪고 있는 나만이 감각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강렬하게 괴로움에도 동시에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신체라는 것이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하여,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아주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을 분리해버리거나 기억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고통을 겪은 것이 분명 자신일텐데도 지금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런 일을 겪기는 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고 여길 만큼의 감각만이 남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신기한 것은, 타인의 고통을 가늠하고 감각하는 일이 마치 그 안에 자기의 아픔이 투명하게 덧대어 진 것처럼 생경하곤 하다는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실감하는 일이 나의 기억이 되어 삶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진정한 고통을 완전히 알게 될 가능성은 없을텐데도, 어떤 고통들과 함께하고 나면 그것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적으며 비로소 드는 생각은,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그 속의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은 글 안에 담긴 삶들을 읽어갈수록 희미해졌다. 어떻게 느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며 흐르던 독서는 마지막에 이르러 순전한 슬픔과 애도가 되었다. 그들이 살아있었고 고통을 느꼈고 죽임을 당했고 함께 공유하여 다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순간들을 결코 어느 한 글자에서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이 시종일관 건조한 문체로 인해 더더욱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것만 같은 글을, 무서운 고통이자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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