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작별하지 않는다

2411 시즌 - 책 <작별하지 않는다>
처음처럼
2024-11-20 18:10
전체공개

제주도는 나에게 언제나 아름다움과 치유의 공간이었다. 탁 트인 푸른 바다, 렌트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릴때 느꼈던 시원함, 바다 냄새를 가득 품고 있는 작은 식당에서의 맛있는 식사. 변화무쌍한 날씨조차도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드는, 그런 특별한 섬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바람과 물결 속에 깊게 자리 잡은 아픔과 고통을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고통받은 이들의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불러내며 그 기억을 새기게 한다.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몰랐던 제주도의 다른 모습, 말할 수 없었던 슬픔의 이야기가 너무나 뚜렷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제주도를 여러 번 여행하며 눈에 담았던 풍경들—그곳의 푸른 바다와 한라산를 둘러싼 중간산—그 아래에 수많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4.3기념관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기념관을 거닐며 전시물을 보았을 뿐, 그곳에 담긴 이야기가 제대로 각인되지 않았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어쩌면 마음속 어딘가가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지 못했을 것이다. 


경하와 인선의 이야기는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현실과 비현실, 생과 죽음, 기억과 망각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때때로 마치 꿈속을 떠도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몽환적인 전개임에도 소설속 등장인물이 느꼈을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한강 작가만이 가진 글의 힘이였을까?


연결.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에 연결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처럼 '진정한 이별'은 없지 않을까? 우리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별을 경험하지만, 그 이별은 결국 완전한 떠남이 아니라, 상처나 기억으로 남아 여전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제주 4.3사건의 상처를 알게 되었고 남은 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공감되었듯이 사람은 떠날지라도, 그들이 남긴 자국이나 기억은 우리에게 계속 남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혹은 다시 제주도를 찾아 그 땅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마주할 때, 조금씩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혀가게 된다.


제주도가 나에게는 여전히 아름답고 힐링의 장소일지라도, 이제는 그 섬에 담긴 깊은 슬픔도 함께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제주도는 더 이상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하고 위로해야 할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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