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그리고 연결

2411 시즌 - 책 <작별하지 않는다>

지니
2024-11-23 11:58
전체공개

  (먼저,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독후감 제출이 늦어졌습니다. 제출일시를 준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몸이 물에 잠긴 것 같다. 눈과 콧구멍과 입술만 겨우 수면 위로 떠오른 채 깊고 어두운 물 아래로 잠긴 것 같다.
몸에 걸친 옷들이 물을 먹어 무거운 그물처럼 수면 아래로 몸을 끌어 내린다. 수면 아래는 끝을 알 수 없는 암흑과 침묵뿐이다.
그 암흑에 저항할 길이 없다.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그 순간, 이미 내 몸은 깊고 짙은 암흑의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는 육중한 그물에 감겨있을 뿐이다. 옴짝달싹할 몸의 기운을 진작에 빼앗겨버린 채 겨우 숨을 고르며, 가끔간간히 눈꺼풀을 떴다 감기를 반복할 수 있을 뿐. 피곤하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이제 눈을 감고 싶다.
이럴 줄 이미 예상했던 걸까? 한강, 그녀의 책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던 까닭은.
이것이 사랑 이야기일까?
왜 그 수많은 생명은 이유도 없이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짓밟히고 스러져 가야만 했을까?

  애써 외면하고, 찾지 않은 시간이었다. 진실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내 삶의 짐도 버거워 자신의 진실을 외면하는 나에게, 의식을 못 하는 사이 내 안의 자아는 외부의 무겁고 무서운 진실을 계속 밀어내며 외면하며 관심을 두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깨닫게 된다.
그것을 직시하지 않는 한 이런 ‘소설’ 같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걸.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누군가 던진 담뱃불의 불씨가 온 섬이 다 타 시뻘건 재 덩이가 되는 모습처럼 자행되지 않기 위해선 진실을 가감 없이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수가 아니었다. 온 섬이 다 타기를 바라며 던진 불씨였다. 그 불씨를 던지며 어떤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을까? '너도 던져'라는 권력의 명령 앞에 함께 불씨를 던진 수많은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 폭력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나도 힘이 없기에, 나도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을까?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죽여야 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인선의 엄마도, 엄마의 상처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선도, 악몽을 끊임없이 꾸는 경하도 그들 모두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머물러있다.
그 고통이 멈추면 신경이 죽어 썩어버릴 살덩이가 되어버릴 것처럼, 살아있기 위해 피를 흘리며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마치 그렇게 멈추지 않는 고통을 온몸으로, 온 생으로 느끼는 것으로 누군가의 폭력에 저항하고, 폭력에 스러져간 자들을 지키는 것만 같다.
처참하게 죽어간 자들도, 처참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자들에게도 이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누구일까?
  고통을 외면하는 자. 도망가는 자. 고통받는 자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 그들은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모습 속에서 여전히 불씨를 던지는 쪽에 서 있다. 아니면 불씨를 던지는 것을 수수방관하거나.
나는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수수방관하는 자, 고통을 외면하는 자, 도망가는 자.

  p.311 여기쯤 멈춰 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기슭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물이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갔어.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게 물 구경인가,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잡았던 기억이 나. 엄마가 쪼그려 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연결. 이들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을까?
  연결.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연결. 이것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P.28 
  그러나 여전히 깊이 잠들지 못한다.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한다.
  여전히 숨을 짧게 쉰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못 견뎌했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P.26  
  아직 무사해.
  거대하고 육중한 칼이 허공에서 나를 겨눈 것 같은 전율 속에서, 눈을 부릅뜸으로써 그 벌판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은 채 나는 생각했다.
비탈진 능선부터 산머리까지 심겨 있는 위쪽의 나무들은 무사하다, 밀물이 그곳까지 밀고 올라갈 순 없으니까. 그 나무들 뒤의 무덤들도 무사하다, 바다가 거기까지 차오를 리는 없으니까. 거기 묻힌 수백 사람의 흰 뼈들은 깨끗이, 서늘하게 말라 있다. 그것들까지 바다가 휩쓸어갈 순 없으니까. 밑동이 젖지도, 썩어들어가지도 않은 검은 나무들이 눈을 맞으며 거기 서 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내리는 눈을.
그때 알았다.
  파도가 휩쓸거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저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 때까지.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에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p.251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p.288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갈라진 인선의 목소리가 정적을 그으며 건너옴다.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p.311 
  여기쯤 멈춰 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기슭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물이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갔어.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게 물 구경인가,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잡았던 기억이 나. 엄마가 쪼그려 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314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 더이상 내 방으로 기어오는 엄마가 없는데 잠을 잘 수 없었어. 더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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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경비병 | 4개월 전

늦게라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피님들의 독후감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