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점점 어지러워지는 숫자

2411 시즌 - 책 <1945년 해방 직후사>

자장가
2024-12-26 15:08
전체공개

표지에 적혀 있는 '1945' 숫자가 뒤로 가면서 점점 어지러워진다. 마지막 숫자 '5'는 브라운 운동을 하는 입자의 움직임처럼 보인다. 입자들의 규칙 없는 움직임은 우연한 충돌과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아마 그 시점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가는 과정의 느낌이 그렇지 않았을가 추측한다. '책의 내용을 이렇게도 표시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원치 않은 스포일러를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세 가지 범주로 정리해 보았다. '저자가 전달하는 역사의 사실', '책이 가지는 독특함', '무엇을 배울 것인가' 라고 구분한다.  

[저자가 전달하는 역사의 사실]

첫 번째는 대한민국의 해방 직후의 역사가 무지와 무능, 그리고 거짓에 휘둘리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높은 이상과 굽히지 않는 열정을 지닌 영웅적인 인물들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꿈꾸어 왔던 국가를 만들어 내는 서사는 없었다. 
오히려 서사의 주체를 바꾸어 말한다면, 그 반대편에 있었던 주체들이 일본의 패망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역전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시기에 읽고 있는 대런 애쓰모글루의 책-'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좁은 회랑'-에서 자주 언급되는 식민지 국가의 '망한' 이야기들이 더 흔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 제도가 전제하는 사람의 본성이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의 상황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법과 제도가 정한 규칙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탐욕과 어리석음을 '패시브로 장착'하고, 욕망을 위해 '성실하고 치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주체들이 '국민들의 공익을 실현하는 궁극적인 존재로서의 국가와 정부'라는 실체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애국, 공정, 정의라는 모든 단어들이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의 시점, 지구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유주의는 언제나 이것이 문제였다. 자유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유주의 통치 체계가 붕괴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상대할 것인가? _ 마크 롤랜,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중에서

세 번째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애를 썼던 부분이 각자의 이야기가 다른데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에 부합하는 지를 찾아가는 것이었고, 많은 자료들을 통해 '합리적 추정'을 해 나간다. 그렇다. '추정'하고, '해석' 할 뿐이다.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라는 곡의 가사 중에는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노랫말이 있다. 사람들은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그것을 겪은 개인의 기존 경험, 그간 축적된 지식, 동기나 정서로 인해 서로 다르게 기억하거나 해석하게 된다. 흔히 영화 이름을 빌어 '라쇼몽 효과'라고 한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러한데, 생각과 행동을 감추고 속이려고 적극적으로 의도했을 경우, 즉 '사실' 조차 명확하지 않아질 경우, '진실'은 끝내 알 수 없게 된다. 

[책이 가지는 독특함]

첫 번째로 주목했던 부분은 기록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정리하고, 연결하고, 대조하는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저술의 힘에 대한 것이다. 
역사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힘을 가진 주체들의 말로서 채워진다. 그와 대립하는 주체들의 이야기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주도면밀하게 제거된다. 정보와 기록을 만드는 주체가 많지 않고, 그것을 유통하고 보관하는 방법이 제한적이었던 과거의 경우, 역사의 편집, 왜곡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여기저기에 남겨진 흔적들을 찾아서, 지워지지 않은 파편들을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저술은 동시에 다른 이들을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자료집이 된다. 표에 제시된 인물들을 하나 하나 읽지 않고 지나가면서 저자의 노력에 대해 충분히 존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했다.

두 번째로 주목했던 부분은 저자가 어떤 법칙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의 행동과 사회 현상을 연구한 많은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기초하여 '어떠한 일관성' 혹은 '법칙'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이해와 감동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는 '드라마'가 더 쉽고 효과적인 수단이겠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수단으로서는 '다큐멘터리'가 더 의미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 올랐다가 지나갔다. 집중이 모자랐던 것 같다. 

먼저 개인적인 맥락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생각했던 것은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라는 경구이다. 
사람들은 타인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와 잘못들을 평가하면서 자신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늙고 병들게 되는 생물학적인 숙명에 있어서도, 탐욕과 어리석음에 빠지는 인지적, 심리적 위험에 있어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경계심을 내려 놓는 순간 위험은 우리를 먹어버리게 된다. 책에 몇 번씩이나 언급되는 어리석은 행동들은 편견과 오만에 자신을 내어놓은 것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결과들이었다. 

우리 주위에는 고작 한 번 깨달은 것으로 일평생을 우려먹으려는 사람이 있다. 속인들은 단 한 번의 각오로 깨달음을 완성하는 선사들의 세계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선사들은 그 깨달음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정진한다. 한 번의 깨달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_ 장정일의 독서일기, <야스토미 아뮤미 '누가 어린 왕자를 죽였는가'> 중, 시사IN, 2028.10.13 

다음으로 조직과 집단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의 맥락에서 생각했던 것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많은 경우 사람의 지적 능력과 인품은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살아온 환경이나 교육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지적 수준이 다를 수는 있으나 인격적인 면에서는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조직에서 업무를 수행할 사람 혹은 대의정치 체제에서 유권자를 대표할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칫 잘못된 기준을 적용하곤 한다. 눈에 보이기 쉽다는 이유로 특정한 기술적 업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행할 사람을 선정하는 기준을 다른 맥락에 적용하는 것이다. 
단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조해 준다는 것을 근거로 사람을 선택해서 거짓에 속고 무능함에 일을 망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목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상황과 관련해서, 희망과 사실을 혼동해서는 안되고, 낙관과 비관 사이의 좁은 길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타]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이자면, 글자가 작고 촘촘하게 인쇄가 되어 있는 책을 읽기가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는 것이다. 상품에 첨부된 설명서와 약관을 읽기가 어려워진 것은 이미 꽤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작은 글자의 책을 긴 시간 동안 읽어내는 것 역시 어려워졌음을 알게 되어 상당히 낙담하게 되었다.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