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완전함은 힘이 될 수 있을까

2503 시즌 - 책 <넥서스>

늘보리
2025-03-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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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과 마주하면 모래밭에 고개를 박고 있는 타조처럼 외면하고 싶어진다. 잠시나마 문제가 사라진 듯한 환상에 머무르면서 불안이 잦아드는 것 같다. 하지만 뇌 한 구석에서는 계속해서 CPU가 돌고 있다.(^^)  그렇게 잠들지 못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서 조금씩 이어가다보면, 갑자기 감자덩이같은 것이 스르륵 끌려나오곤 한다. 그제서야 문제를 마주할 힘이 생긴다.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넥서스>를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인간에 대해 고민한 것을 몸소 겪을 수 있었다.^^ 모임일이 가까워지는데 계속 다른 일들을 벌이면서 책 읽는 시점을 미루고, 독후감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야 허겁지겁 책을 읽고, 마감시간에 임박했는데도 가게를 찾은 손님과 한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넥서스>에 관한 이야기를…), 손님을 보낸 뒤에는 수리를 마친 기타를 받은 기념으로, 기타 소리가 더 좋아졌다면서 기타 연주로 빠지고, 결국은 밤늦게 귀가해서는 침대맡에 노트북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다가 불을 켠 채로 잠들었다. 간간이 깨어나면 계속에서 AI 고민을 이어가고 그러다 잠들기를 반복… 그러다 문득 내 행동이 AI와 딱 반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AI라면 정해진 시간 안에 최고의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는 데 집중했을 테니까. 갑자기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명제가 떠올랐다. 불완전함, 이것은 인간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을 떠올릴 때 계속해서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우월한 점’에 주목해왔다. 창의적인 활동은, 주체적인 사고와 결정은, 친밀한 감정을 주고받는 일은 인간 고유의 영역에 속하며, 이런 덕목 덕분에 인간은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해도 살아남을 거라고 위안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빠른 기간에 하나씩 무참히 깨졌고, 이제는 인간이 지구생태계의 다른 존재들보다 우월한 근거로 여겨온 ‘지능’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왔다. <넥서스> 책 한 권을 읽고 고민해서 생각을 길어올릴 때까지 내게는 며칠이 걸리지만, AI는 얼마 되지 않아 책을 요약하고 요지를 분석하고 반박하고 관련 예시들을 찾아보여줄 것이다. AI보다 우월한 점을 찾는 것은 AI시대에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무용한 일이 되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뒤집어 ‘불완전함’, ‘오류’는 인간의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인공지능보다 우월한 능력을 찾아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던 생각 자체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점철된 문화 안에 갇힌 생각이었던 것 같다. 왜 ‘약함’은 경쟁력이 될 수 없는가. 얼마 전 김홍중 교수님의 신작 <세계에 대한 믿음>에서 약함이 힘이 될 수 있다는 구절을 만나 깜짝 놀랐다. 약한 존재들은 주변 사람들(돌봄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음을, 보살핌을 받는 것도, 수용하는 것도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대목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낭독회에서 작가님이 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취약하기 때문에 서로가 연결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인간 존재를 인공지능보다 취약한, 오류투성이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인공지능을 통한 각자도생을 모색하다 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생명체 모두가 전례없는 연결 속에서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았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 완벽한 ‘진실’은 없음을 인지하는 것, 정보가 제 역할을 하는 데 ‘진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정보의 목적에는 진실 추구뿐만 아니라 질서 유지도 있으며, 질서 유지의 역할을 부정의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점, 이 모든 것의 균형 안에서 인류가 스스로 창조하고 주입해온 이야기와 문화와 가치를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비단 유기체로 이루어진 인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비유기적 정보망을 이루는 인공지능 세계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 또한 인공지능이라는 불가해한 기술을 현명하게 다루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상상하고 고안한, 그리하여 스스로를 가둔 틀(이념, 문화, 종교 등)에서 벗어나 논의하면서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전복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정불변의 완벽한 진리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계속해서 보완하는 자정 과정 그 자체다. 하지만 정작 다양한 입장을 중재해야 할 정치의 후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계엄 이후 이어진 일련의 비민주적인 움직임들에 충격은 물론 공포마저 든다. 특히 질서 유지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겼던 법원이 극우 유튜버를 비롯한 폭도들에 습격당한 장면은 알고리즘 단속(?)을  묵과할 때 일어날 최악의 미래의 단면을 미리 엿본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참여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발생한 문제들은 이미 익숙해졌다. 인간을 조정하는 수많은 감정들 중 분노와 공포가 도드라졌고, 이것이 온라인 현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대한민국 광장의 모습은 딱 온라인 게시판을 현실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한 편에서는 선거 조작이라는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애국하겠다며 탄핵 반대를 외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대하는 이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와서 탄핵을 외친다. 두 진영 사이에 대화는 불가능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서, 정보의 역할이 진실 추구와 질서 유지 사이의 적정선을 찾는 것이라면 정보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 수많은 정보가 떠돌고 있지만 어떠한 것도 둘 사이를 이어주지 못한다. 책과 뉴스가 아닌, 유튜브, 그것도 극우 채널에 빠진 대통령과 정치인을 둔 비극이라고 하기엔 대가가 크다. 어쩌면 오랫동안 알고리즘이 주는 안락함에 빠진 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무시해온 행위들이 쌓여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문화가 되어버린 결과를 모두가 감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갈등들의 회피가 불러온 나비효과일 수도 있겠다. 그 사이 소외된 이들은 자극적인 유튜브 영상과 숏폼에서 즉각적인 위안을 찾고 여기에 의존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들에게 콘텐츠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정보는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자기 세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에 치우쳐 있을 테니까.

결국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는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의 몫이다.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이 있진 않은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한 이들이 있진 않은지 곱씹게 된다. 현실에서의 건강한 관계 맺기가 실패할 때 인간은 알고리즘에서 보상을 찾는다. <클라라와 태양>에서처럼 인공지능 친구를 두어 정서적인 문제를 풀 수도 있을 것이다. <넥서스>에서도 언급되듯이 누군가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최적의 위로를 전하는 것은 인간보다 AI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최적화된 솔루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이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일 때 인공지능은 클립을 만들기 위해 인류와 지구는 물론 우주를 정복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파괴해서 얻어낸 클립이 무슨 소용일까. 마찬가지로 수많은 관계를 적으로 만들어서 얻는 위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쓰다보니 길어지고 말았다. AI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을 중간중간 했다. ㅠㅠ 그런데 이렇게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외면했던 마음들을 살피고 반성하게 되는 과정이 마감기한 안에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심지어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시간을 지키지 못해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는 것도 함께….. 이런 불완전함이 쌓여서 언젠가는 좀 더 마감을 지키면서 깊이 사유하는 나로 이어질 거라…… 기대해본다. <넥서스>를 읽고 독후감을 쓰고 제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간성의 단면을 엿본 것같은 환상 내지 나만의 신화? 같은 것이 느껴져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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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호호 | 14일 전

약하기 때문에 지닐 수 있는, 난관을 몸소 거치면서야 생기는 깊은 지혜와 즐거움이 있다고 믿습니다. 고친 기타 연주 듣고 싶네요 ^^

토미 | 14일 전

약함이 힘이 될 수 있다는 말, 취약하기 때문에 서로가 연결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 너무 새롭고 좋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