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 너머 세상과 관계 맺기
심원
2024-06-14 17:35
전체공개
원제 : The world beyond your head ( 당신 머리 너머의 세계)
부제 : On becoming an individual on Age of distraction
( 정신 산만한 시대에 한 개인이 되는 것에 관하여 )
제목처럼, 이 책은 주의를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에 인식과 사고체계만 작동하는 내 머리에서 벗어나 이 세상에서 사물과,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진정한 나를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보고서다
저자는 표상에 맞서 실재를 복원하려는 철학적 기획에서 이 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선을 잡아채는 현란한 광고 매체들과 가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소리의 홍수속에서 내 눈과 귀는 물론 주의력까지 모두 빼앗겨 나는 무차별적으로 상업화된 기업들의 마켓팅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린다.
아이들의 주의력은 물론 감정까지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아이들 장난감부터 사람으로 꽉 찬
비좁은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핸드폰 게임과 유투브들. 시간도 공간도 잊고 오로지 화면에만 몰입하도록( 앉은채로 일을 볼 만큼) 엄청나게 용의 주도하게 디자인된 카지노의 슬롯머신 기계들까지. 우리가 사는 곳은 나의 주의력의 대상과 시간을 내 의지대로 스스로 정하기도 어렵고, 일관된 주의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이쯤되면 주의력을 공공재로 만들자는 의견에도 귀가 솔깃해진다. 나의 이 유한하고 유약한 주의력을 공공재로 만들어, 들볶이지 않으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권리로 보호해 줘야 하지 않을까 ( 물론 공기나 물 같은 공공재나 소음도 빈부에 따른 위계가 있긴 하지만..)
그러려면 나는 기계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 나를 정립해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1. 머리 너머 사물과 관계맺기
주의력을 높여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가는 지그의 ( 전통 같은 문화적 지그든 시스템화된 관리적 지그든)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랜 연습과 훈련으로 기계와 연결된 듯 감각하고 행동하는 체화된 지각으로 사물과 맞닥뜨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가히 달인의 경지이다. 공부가 바로 쿵후(쿵푸) 아니던가. 공부란 바로 많은 시간을 들여 익히는 것이다. 무술이 됐던, 아이스 하키 타기든 만두 빚기든.
저자는 운전 경험과 격리시키는 자율자동차나 증강현실보다는 물자체와 맞닥뜨려 존재론적 참여를 더 권한다. 직접 운전하다 위험을 자각하면 주의가 더 집중되므로. 그리고 어린아이가 직접 사물을 만지고 조작해가며 감각을 익히고 체화된 인식을 발전시키듯이. 이건 머리로만은 할 수 없는, 몸으로 직접 부딪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박중독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스스로 결정해서 한 것이니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거나, 혹은 의지박약이나 내면적 결함으로 치부해서 도박업체에 면죄부를 줄 것이 아니라 몰입을 극대화해서 슬롯머신 기계에서 헤어나올 수 없도록 (앉은 자리에서 일을 보도록까지) 디자인한 도박업체에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그걸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나의 의지대로 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게 디자인해서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 해 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변화를 이끌 수 도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존 로크의 자유론의 현대적 의미가 아닐까..)
계몽주의 시대의 인식론에서 진리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정립되고 표상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근본 수단이라고 봤다면 이제 안다는 것의 의미는 세상을, 사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2. 머리 너머 사람과 관계맺기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어찌됐던 여러사람과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산다.
저자는, 함께 일을 할 때는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共注意가 필요하고 ( 유리 제조처럼) 자율적 교육 형태와는 다른 도제식의 권위적 형태가 필요하다고도 본다. 그래야 이론적 사고와 경험론적 사고가 어우러져 진정한 자기의 것이 되고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다고도 본다. (물론 이때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이런 타인과의 협력이 교육의 핵심이다. 공유된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고 함께 행위하는 것이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결정하는 근본이 된다. 개인성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 헤겔도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그 행위를 통해 자아를 알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개인성은 단순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빚어내는 것이다 ( 빚는다는 의미는 재료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물질이 출현하는 것이다)
또 한 사회규범도 필요하다고 봤는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틀을 사회규범 내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나보다 나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숙련의 과정을 거쳐 숙련가 ( 장인, 전문가) 가 되는 것이 자신을 탁월한 사람으로 차별화 하는 참된 개인성이라고 봤다.
이 때 주의력은 자신이 관심을 갖는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고 주의를 쏟으면 그 대가로 실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아와 타인, 세계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체육관과 YMCA의 음악선곡에서, 체육관 조교는 자신의 선택을 남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며 emo 음악을 방치하고 YMCA의 음악은 음악공급회사가 결정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한 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기관이다. )
개인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과 의견대립을 겪을 수도 있고 또 타인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고쳐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의견도 남에게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도 이룰 수 없다. 자신을 제 3자화 하거나 통계적으로 평준화 시키지 말고 사적 자아를 공적자아로 변화시켜 기관이나 단체에도 항의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 ( 여기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몇 개의 경험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명료하게 파악을 하고 독립적인 판단력도 장착하고 또 타인과 갈등하고 부딪치고 반항도 하고 또 협력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자신이 사는 세계와 관계 맺는 방법이다.
정리를 하자면
사물과의 관계에서는 사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표상을 통해 대면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타인과 갈등도 하고 반항도 하고 협력도 해 가며 자신의 개인성을 빚어내고 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적 자아를 공적 자아로 바꿔 행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머리 너머 세상으로 인도한단다. ^^
부제 : On becoming an individual on Age of distraction
( 정신 산만한 시대에 한 개인이 되는 것에 관하여 )
제목처럼, 이 책은 주의를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에 인식과 사고체계만 작동하는 내 머리에서 벗어나 이 세상에서 사물과,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진정한 나를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보고서다
저자는 표상에 맞서 실재를 복원하려는 철학적 기획에서 이 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선을 잡아채는 현란한 광고 매체들과 가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소리의 홍수속에서 내 눈과 귀는 물론 주의력까지 모두 빼앗겨 나는 무차별적으로 상업화된 기업들의 마켓팅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린다.
아이들의 주의력은 물론 감정까지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아이들 장난감부터 사람으로 꽉 찬
비좁은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핸드폰 게임과 유투브들. 시간도 공간도 잊고 오로지 화면에만 몰입하도록( 앉은채로 일을 볼 만큼) 엄청나게 용의 주도하게 디자인된 카지노의 슬롯머신 기계들까지. 우리가 사는 곳은 나의 주의력의 대상과 시간을 내 의지대로 스스로 정하기도 어렵고, 일관된 주의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이쯤되면 주의력을 공공재로 만들자는 의견에도 귀가 솔깃해진다. 나의 이 유한하고 유약한 주의력을 공공재로 만들어, 들볶이지 않으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권리로 보호해 줘야 하지 않을까 ( 물론 공기나 물 같은 공공재나 소음도 빈부에 따른 위계가 있긴 하지만..)
그러려면 나는 기계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 나를 정립해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1. 머리 너머 사물과 관계맺기
주의력을 높여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가는 지그의 ( 전통 같은 문화적 지그든 시스템화된 관리적 지그든)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랜 연습과 훈련으로 기계와 연결된 듯 감각하고 행동하는 체화된 지각으로 사물과 맞닥뜨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가히 달인의 경지이다. 공부가 바로 쿵후(쿵푸) 아니던가. 공부란 바로 많은 시간을 들여 익히는 것이다. 무술이 됐던, 아이스 하키 타기든 만두 빚기든.
저자는 운전 경험과 격리시키는 자율자동차나 증강현실보다는 물자체와 맞닥뜨려 존재론적 참여를 더 권한다. 직접 운전하다 위험을 자각하면 주의가 더 집중되므로. 그리고 어린아이가 직접 사물을 만지고 조작해가며 감각을 익히고 체화된 인식을 발전시키듯이. 이건 머리로만은 할 수 없는, 몸으로 직접 부딪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박중독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스스로 결정해서 한 것이니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거나, 혹은 의지박약이나 내면적 결함으로 치부해서 도박업체에 면죄부를 줄 것이 아니라 몰입을 극대화해서 슬롯머신 기계에서 헤어나올 수 없도록 (앉은 자리에서 일을 보도록까지) 디자인한 도박업체에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그걸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나의 의지대로 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게 디자인해서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 해 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변화를 이끌 수 도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존 로크의 자유론의 현대적 의미가 아닐까..)
계몽주의 시대의 인식론에서 진리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정립되고 표상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근본 수단이라고 봤다면 이제 안다는 것의 의미는 세상을, 사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2. 머리 너머 사람과 관계맺기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어찌됐던 여러사람과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산다.
저자는, 함께 일을 할 때는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共注意가 필요하고 ( 유리 제조처럼) 자율적 교육 형태와는 다른 도제식의 권위적 형태가 필요하다고도 본다. 그래야 이론적 사고와 경험론적 사고가 어우러져 진정한 자기의 것이 되고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다고도 본다. (물론 이때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이런 타인과의 협력이 교육의 핵심이다. 공유된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고 함께 행위하는 것이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결정하는 근본이 된다. 개인성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 헤겔도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그 행위를 통해 자아를 알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개인성은 단순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빚어내는 것이다 ( 빚는다는 의미는 재료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물질이 출현하는 것이다)
또 한 사회규범도 필요하다고 봤는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틀을 사회규범 내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나보다 나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숙련의 과정을 거쳐 숙련가 ( 장인, 전문가) 가 되는 것이 자신을 탁월한 사람으로 차별화 하는 참된 개인성이라고 봤다.
이 때 주의력은 자신이 관심을 갖는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고 주의를 쏟으면 그 대가로 실재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아와 타인, 세계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체육관과 YMCA의 음악선곡에서, 체육관 조교는 자신의 선택을 남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며 emo 음악을 방치하고 YMCA의 음악은 음악공급회사가 결정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한 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기관이다. )
개인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과 의견대립을 겪을 수도 있고 또 타인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고쳐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의견도 남에게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도 이룰 수 없다. 자신을 제 3자화 하거나 통계적으로 평준화 시키지 말고 사적 자아를 공적자아로 변화시켜 기관이나 단체에도 항의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 ( 여기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몇 개의 경험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명료하게 파악을 하고 독립적인 판단력도 장착하고 또 타인과 갈등하고 부딪치고 반항도 하고 또 협력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자신이 사는 세계와 관계 맺는 방법이다.
정리를 하자면
사물과의 관계에서는 사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표상을 통해 대면하는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타인과 갈등도 하고 반항도 하고 협력도 해 가며 자신의 개인성을 빚어내고 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적 자아를 공적 자아로 바꿔 행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머리 너머 세상으로 인도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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