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을 통해 얻은 게 많구나?
경비병
2024-06-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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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터 춰왔던 춤이 내 성격에 큰 영향을 줬다고 짐작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춤이 내게 준 영향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춤을 통해서 머리 밖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몸이라는 도구는 태어나 자라면서 익숙해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몸을 움직이는데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도구의 쓰임새를 다르게 하면 다시 낯선 영역이 된다. 몸으로 만들 수 있는 낯선 영역은 무궁 무진하다. 이런 새로운 동작 궤도를 탐험하고 학습해 나가는 게 바로 춤이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익히려면 매우 많은 인지적 자원이 든다. 매번 자원을 쏟아붓고 가꿔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몸에 체득되게 되고, 책에서 말한 ‘투명한 영역’이 된다. 이것은 인지적 확장이자 자아의 확장이다. 그 후에는 감각이 체득된 동작 끝에 위치하게 되며, 그 다음 응용 동작을 익히는데 신경을 쓸 수 있게 된다. 연습을 하며 탁월함을 추구할 수록 이런 자아의 확장은 반복된다. 나는 이렇게 세상과의 연결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경험을 어릴때 부터 누릴 수 있었다.
춤은 세상과의 피드백 고리를 형성한다. 내가 하는 브레이크댄스(비보이)는 무작위 음악에 춤추는 게 기본이다. 배틀에 참여했을 때 내가 춤추는 순서에 어떤 음악이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내 몸에 ‘투명한 영역’이된 동작들을 가지고 음악에 맡게 바로 뽑아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음악과의 무아지경에 빠지면 고막으로 들어온 음악이 내 머릿속에서 해석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배틀이 끝나고 영상을 보면 “내가 이런 동작을 했었다고?” 라고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객들도 그 무아지경을 느낀다는 것이다. 대게 그런 춤에 더 경탄하고 전율이 돋는다. 이것이 인간에 서로에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음악뿐만이 아니라 바닥의 습도와 재질에도 미세하게 반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헤드스핀이라는 기술을 자주 했는데, 이것은 바닥에 접지된 상태로 돌기 때문에 재질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특정 경지에 올라가게 되면, 바닥이 부직포이든 플라스틱이든 대리석이든 보도블록이든 혹은 약간 기울었든. 헤드스핀이 시작된 즉시 바닥을 느끼고 거기에 따라서 근육과 기울기가 미세하게 조정된다. 슈바이처가 비판한 전자공기식 오르간 처럼. 헤드스핀과 나 사이의 어떤 중간 매개가 있었다면 나는 바닥의 재질에 따른 피드백을 받지 못하고 근육의 미세한 조정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춤을 통해서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고, 세상과 교류하는 법을 배웠으며. 주의력을 갈고닦았다. 한 마디로 ‘개인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춤 연습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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