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까치의 비행 연습

더듬이
2025-04-06 18:57

요즘 곳곳에서 뒤늦게 데이터 주권을 얘기한다. 하지만 이미 내 휴대폰 번호의 프라이버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문자 광고만 봐도 그렇다. 웬만한 건 바로 휴지통 처리되는데, 지난주 어떤 분양 광고가 방심하는 사이 눈에 들어왔다. 분양가에서 30% 할인인 데다 위치가 서울 근교였다. 요즘 새로 짓는 집들 내부는 어떤지 호기심도 일었다. 마침 다른 볼일을 보러 가는 길에 있어 구경 삼아 잠시 들렀다. 그랬다가 견물생심이라고, 낚였다. 신축이어서 내부 설비가 요모조모 좋아 보였고 특히 주변 경관이 맘에 들었다. 방문객들이 많았고, 특히 내가 맘에 들어한 물건에 이미 관심을 보인 사람이 많았다기에 덜컥 가계약까지 했다. 하지만 나중에 따져보니 다른 건 내버려 두고라도 대중교통 편이 아무래도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지금 사는 곳의 여러 장점이었다. 역시 사람은 뭐든 익숙한 것에는 둔감해진다. 헤아리기 시작하니 줄줄이 이어지는 장점 중 하나가 긴 하천을 따라 걷는 산책길이 바로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로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섰다. 걸을 때마다 길게 펼쳐진 천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있는 푸른 수목들이며, 곳곳에 자리 잡은 갖가지 새들의 노랫소리가 오늘 따라 더 정겹다. 오늘은 희한하게도 평소 같으면 드문드문 합쳐서 두 세 마리 정도를 보고 말았을 해오라기를 한 곳에서 다섯 마리나 봤다. 그 사이에 식구가 늘어난 건지, 두 식구가 모여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예민한 새들의 개체가 늘어났다는 건 이곳 서식 환경이 좋다는 얘기겠다. (아니면 점점 더 오갈 데가 없어진다는 뜻이거나)
청둥오리와 함께 까치는 이곳 주요 텃새에 속하는데, 오늘 눈에 띄는 것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새끼 새들의 비행 연습이다. 이제 까치는 하도 봐서 보기만 해도 체구(가령 어릴수록 작다)며 털(훨씬 깨끗하고 가늘고 보송보송하다)이며 날갯짓(서툴다)이며 행동거지(조심스럽고 정직하다)에서 어른인지 청년인지 애기인지 웬만큼은 구분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오늘 본 녀석들은 천을 가로질러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가며 비행 연습에 한창인 어린이들임에 분명하다. 마치 수영장에서 어깨에 부양 튜브를 낀 채 양팔을 바꿔 뻗어가며 영법을 익히는 아이들처럼 이 녀석들도 작은 날개를 열심히 퍼덕이며 반대편 대각선으로 날아간 끝에 무사히 나뭇가지에 내려 앉는다. 그래, 잘했어, 하며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무언가 제대로 배우고 익혀 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여기서 조금 더 자란 녀석들은 제법 비행을 즐기는 투다. 가슴을 내밀며 몇 차례 날개를 저어 몸을 솟구친 후에는 공기 흐름에 몸체를 싣고 활강까지 한다. 좋은 것은 대개 보기에도 아름답다. (물론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인공물은 주의해야 한다. 사람은 아름다움마저 이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다 큰 녀석들은 이런 '쓸데없는 낭비'에 해당하는 자유 비행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같다. 먹이를 구하거나 집을 짓거나 짝을 찾거나 영역 다툼을 벌이거나 어떤 필요 때문에 이동할 때 정도나 힘을 쓸까. 까치도 어릴 때나 성장기 때의 타고난 호기심과 모험심은 크면서 잃어버리게 돼 있는 건가.
사회적 지능이 발달한 인간은 본능보다 사회 생활에 필요한 학습에 기대는 과정이 훨씬 길다. 그래서 다른 종 같으면 유년기에나 발동하다 마는 탐구욕이 평생 이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아이 못지않은 호기심을 유지하거나 더 왕성하게 발휘하는 사람을 본다. 그런 사람은 꼭 비행을 처음 배우는 새끼 까치의 모습을 닮았다. 보기만 해도 덩달아서 이른 아침 공기처럼 맘속이 싱그러워진다.
그러게, 하마터면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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