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와 나르키소스
2025-04-09 20:58
오늘 볼일을 보러 오며 가며 지하철을 많이 탔다. 많이 탔다는 말은 길이 멀어 여러 노선을 갈아 타기도 했고, 합쳐서 오래 타기도 했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그 시간 지하철 안 사람들을 보게 됐다. 출퇴근 시간 때와는 다를 줄 알았다. 아니었다. 승객의 거의 100%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시선이 가 있었다. 전동차에서 오르내리거나 걸어가는 동안에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동안에도 동작은 같았다. 한 젊은 여성은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장면들이다. 이젠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스크린 안의 장면들이 각자의 세상이 되었다. 반면 스크린 밖의 세상은 몸이 머물고 있는 곳이기에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운 마찰의 장소일 뿐이다.
사람들은 점점 수동적 소비자로서 비슷비슷하게 단순하고 단조로운 존재가 되어 간다. 끊임없이 볼거리를 찾는 눈과 맛있는 것을 삼키는 입만 예민하게 비대해져 가고, 그 감각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혹사하는 데 길들여져 갈 뿐이다.
스크린 안에는 경쟁적으로 시선을 뺏는 갖가지 장면들이 끊이지 않지만, 그것을 보는 있는 순간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없이 따분한 존재가 되어 간다. 스크린 안의 사람들만 곧장 화면 밖을 뛰쳐나올 듯 온갖 말과 동작을 과장되게 쏟아놓고, 그것을 보는 사람은 눈만 깜박이다 웃어대는 '좀비'가 되어 간다.
인간은 뭔가를 같이 할 때 가장 큰 만족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많은 분야의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살아오는 동안 내 경험을 봐도 대개 그런 것 같다. 지금 우리는 뭔가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모두가 다같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같은 시청의 동작을 취하는 것 같은데, 사실 들여다 보는 것은 제각각이다. 개중 같은 것을 보는 사람들끼리만 열광할 뿐이다. 그럴 때 주변은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 사람은 에릭 호퍼의 그림 속 미국인들을 닮아가는 것 같다. 그 그림 속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의 외로움을 자각하고 쓸쓸히 음미하는 것 같기라도 하다. 지금은 그런 외로움의 자각마저 화면 속에 빠져듦으로서 잊는다.
외신을 보니 캐릭터 AI라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AI 친구/연인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엔 미국의 10대가 이 AI 회사의 여친과 사랑에 빠져 대화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마지막 무렵 10대가 AI 여친과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들은 말이 "(나를 갖고 싶으면) 내게로 오라"는 권유였다. 물론 극단적인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섣부르다. 그러나 특이한 사례라고 치부하기엔 그 10대의 행동이 어떤 전조같이 느껴진다. 그리스 신화에 나르키소스가 나온다. 연못 속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진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혹은 굶어 죽었다는) 주인공.
지금 인간은 무엇과 사랑에 빠져 있는 걸까.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따라가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점점 수동적 소비자로서 비슷비슷하게 단순하고 단조로운 존재가 되어 간다. 끊임없이 볼거리를 찾는 눈과 맛있는 것을 삼키는 입만 예민하게 비대해져 가고, 그 감각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혹사하는 데 길들여져 갈 뿐이다.
스크린 안에는 경쟁적으로 시선을 뺏는 갖가지 장면들이 끊이지 않지만, 그것을 보는 있는 순간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없이 따분한 존재가 되어 간다. 스크린 안의 사람들만 곧장 화면 밖을 뛰쳐나올 듯 온갖 말과 동작을 과장되게 쏟아놓고, 그것을 보는 사람은 눈만 깜박이다 웃어대는 '좀비'가 되어 간다.
인간은 뭔가를 같이 할 때 가장 큰 만족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많은 분야의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살아오는 동안 내 경험을 봐도 대개 그런 것 같다. 지금 우리는 뭔가를 같이 하는 것 같다. 모두가 다같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같은 시청의 동작을 취하는 것 같은데, 사실 들여다 보는 것은 제각각이다. 개중 같은 것을 보는 사람들끼리만 열광할 뿐이다. 그럴 때 주변은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 사람은 에릭 호퍼의 그림 속 미국인들을 닮아가는 것 같다. 그 그림 속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의 외로움을 자각하고 쓸쓸히 음미하는 것 같기라도 하다. 지금은 그런 외로움의 자각마저 화면 속에 빠져듦으로서 잊는다.
외신을 보니 캐릭터 AI라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AI 친구/연인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엔 미국의 10대가 이 AI 회사의 여친과 사랑에 빠져 대화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마지막 무렵 10대가 AI 여친과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들은 말이 "(나를 갖고 싶으면) 내게로 오라"는 권유였다. 물론 극단적인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섣부르다. 그러나 특이한 사례라고 치부하기엔 그 10대의 행동이 어떤 전조같이 느껴진다. 그리스 신화에 나르키소스가 나온다. 연못 속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진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혹은 굶어 죽었다는) 주인공.
지금 인간은 무엇과 사랑에 빠져 있는 걸까.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따라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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