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사쿠라, 대통령
2025-04-11 22:01
곳곳이 벚꽃이다. 갓튀긴 팝콘처럼 사방을 우윳빛으로 장식했다. 어떤 곳은 벌써 바람에 떨어진 꽃잎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지는 모습도 산뜻해 모란 같은 처연함이 없어 좋다.
가만히 보면 종류도 여러 가지다. 연분홍빛이 흰색을 물들인 것이 흔하지만, 나는 연두색 꽃받침 위로 새하얗게 핀 꽃이 더 청초해 좋다.
어느새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어디에고 벚꽃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한때 벚꽃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일본은 우리 무궁화 같은 국화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왜 점점 보기가 힘들어질까.)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터부시된 적이 있었다. 그땐 변절에 능한 기회주의 정치인을 벚꽃의 일본말인 '사쿠라(さくら)'라고 불렀다.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에 퍼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 놀이인 화투장에도 사쿠라 그림이 나온다.
내가 본 벚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10여 년 전 워싱턴 DC에서 본 것이다. 그곳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한 달 간 '내셔널 체리 블라썸 페스티블'이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린다. 미국 수도를 가로지르는 포토맥 강을 따라 조성된 인공 호수인 타이달 베이슨을 둘러 가며 심은 벚나무가 폭죽처럼 만개해 상춘객들을 한껏 들뜨게 한다. 기원이 우리로서는 좀 서글프다.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는 미국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한 감사와 친선의 표시로 일본이 벚꽃 묘목 3020주를 기증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매년 봄 이곳에서 화사한 벚꽃 축제가 열릴 때마다 인근 광장에서는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갖가지 부대 행사도 함께 벌어지는데, 일본의 국교인 신도가 우리에게는 전범의 위패를 모신 신사와 정치인들의 참배로 각인된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생태학적인 사상으로 재해석되어 미국인들에게 평화 애호적인 이미지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때가 되면 미국 전역에서 벚꽃을 감상하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봄 풍경에 취한 사람들은 호수 위로 흩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그저께 외신 사진을 보니 이런 무리 중 한 가족의 기념 사진 배경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나가는 장면이 마치 카메오 출연자처럼 찍혔다고 해서 소개가 되어 시선을 끌었다. 포즈를 취한 꼬마 둘은 뒤로 지나가는 오바마를 알리 만무했고, 사진을 찍어주던 사진사는 물론, 청바지에 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채 지나가던 긴 다리의 오바마도 자신이 그 가족 사진에 찍힐 줄은 몰랐던 것 같다. (혹은 알고도 짐짓 가족들이 뒤늦게 알고 놀라기를 바랐거나)
이 가족은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면서 “우리 가족에게 정말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됐고, 사진은 말 그대로 가보가 됐다"고 설명을 붙였다. 소식을 전해 들은 오바마도 여기에 직접 댓글까지 달았다. “당신과 자녀들이 벚꽃이 한창일 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랍니다. 사진에 끼어들어 미안해요.” 웃는 표정과 함께 꽃 모양의 이모티콘도 덧붙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오늘, 이 나라에서도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카메오 출연이 아니라 자발적인 주인공으로 나서 언론의 집중적인 사진 세례를 받았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장면이 사람들의 기억에 또 하나 추가됐을 뿐이다.
가만히 보면 종류도 여러 가지다. 연분홍빛이 흰색을 물들인 것이 흔하지만, 나는 연두색 꽃받침 위로 새하얗게 핀 꽃이 더 청초해 좋다.
어느새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어디에고 벚꽃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한때 벚꽃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일본은 우리 무궁화 같은 국화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는 왜 점점 보기가 힘들어질까.)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터부시된 적이 있었다. 그땐 변절에 능한 기회주의 정치인을 벚꽃의 일본말인 '사쿠라(さくら)'라고 불렀다.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에 퍼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 놀이인 화투장에도 사쿠라 그림이 나온다.
내가 본 벚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10여 년 전 워싱턴 DC에서 본 것이다. 그곳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한 달 간 '내셔널 체리 블라썸 페스티블'이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린다. 미국 수도를 가로지르는 포토맥 강을 따라 조성된 인공 호수인 타이달 베이슨을 둘러 가며 심은 벚나무가 폭죽처럼 만개해 상춘객들을 한껏 들뜨게 한다. 기원이 우리로서는 좀 서글프다.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는 미국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한 감사와 친선의 표시로 일본이 벚꽃 묘목 3020주를 기증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매년 봄 이곳에서 화사한 벚꽃 축제가 열릴 때마다 인근 광장에서는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갖가지 부대 행사도 함께 벌어지는데, 일본의 국교인 신도가 우리에게는 전범의 위패를 모신 신사와 정치인들의 참배로 각인된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생태학적인 사상으로 재해석되어 미국인들에게 평화 애호적인 이미지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때가 되면 미국 전역에서 벚꽃을 감상하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봄 풍경에 취한 사람들은 호수 위로 흩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그저께 외신 사진을 보니 이런 무리 중 한 가족의 기념 사진 배경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나가는 장면이 마치 카메오 출연자처럼 찍혔다고 해서 소개가 되어 시선을 끌었다. 포즈를 취한 꼬마 둘은 뒤로 지나가는 오바마를 알리 만무했고, 사진을 찍어주던 사진사는 물론, 청바지에 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채 지나가던 긴 다리의 오바마도 자신이 그 가족 사진에 찍힐 줄은 몰랐던 것 같다. (혹은 알고도 짐짓 가족들이 뒤늦게 알고 놀라기를 바랐거나)
이 가족은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면서 “우리 가족에게 정말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됐고, 사진은 말 그대로 가보가 됐다"고 설명을 붙였다. 소식을 전해 들은 오바마도 여기에 직접 댓글까지 달았다. “당신과 자녀들이 벚꽃이 한창일 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랍니다. 사진에 끼어들어 미안해요.” 웃는 표정과 함께 꽃 모양의 이모티콘도 덧붙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오늘, 이 나라에서도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카메오 출연이 아니라 자발적인 주인공으로 나서 언론의 집중적인 사진 세례를 받았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장면이 사람들의 기억에 또 하나 추가됐을 뿐이다.
댓글
더듬이 님이 하루에 머문 시선과 생각들이 연결되는 지점이 참 수려합니다. 세상은 종종 악몽 같지만 이런 모습을 연결지어가며 수려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놀랍도록 근사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악몽 같은 혼돈 속에서도 빛나는 것들을 찾고 발견하고 수집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변신하는 '레오나르도'님도 힘을 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