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다짐

더듬이
2025-04-12 16:54

오늘 아침 산책길에 그 아저씨를 또 만났다. 작년 겨울에 이어 두 번째다. 이른 시간에 그 추위에도 반바지 차림이어서 놀랐지만 물가에 서서 하는 행동이 기이하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땐 나는 멀찍이 반대편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게 되었는데 마치 단상에 오른 웅변가처럼 팔동작까지 해가며 뭐라고 일장 연설을 하는 게 아닌가. 가만 들어보니 에머슨의 <자기 신뢰>의 한 대목 같았다. 마지막에 에머슨이 그런 말을 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오늘도 먼 발치에서 봤는데 비슷한 말과 동작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는 무슨 구호까지 외치는 것으로 끝을 맺고는 태연히 자신의 길을 갔다. 아마 오랫동안 자신의 의례처럼 해온 일인 듯싶다.

에머슨의 말에서 영감을 얻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캐릭터가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재미있다. 그런 열정과 기운이 한겨울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아침 운동을 나서게 하는 것일 테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는 아침 산에서 아리아를 부르는 중년 남성을 접한 기억도 떠오른다. 성악 전공자가 아침 발성 연습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진지하게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그렇게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용기가 좋아 보였다. 사실은 나도 산책길에 어떤 흥이 일면 떠오르는 노래를 가만히 불러볼 때가 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에 한해서다. 하기야 내 노래도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일상 속에서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만의 예술적 표현을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성방가 아니냐고? 음,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를 텐데, 그런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줄 아는 소양 정도는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강연자로 저술가로 명성을 떨쳤던 에머슨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언으로도 유명하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한 마디는 이것이다. "행복하다는 말은 모든 것이 완전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불완전함, 그 이후의 것을 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다."

에머슨의 제자가 소로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소로는 <월든>에 짜 넣은 글감의 대부분을 일기에서 얻었는데, 그렇게 하는 데는 에머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소로의 첫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네는 지금 뭘 하고 지내나? 일기는 쓰고 있나?'하고 그가 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첫 번째 일기를 쓴다."
뭔가 깨우침을 얻고 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모습이 소로답다.
매일 아침을 다짐의 웅변으로 시작하는 그 반바지 차림의 아저씨도 어느날 문득, 에머슨의 글을 읽고 난 후 그런 의례를 시작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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