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더드미
2025-04-18 07:15
아침 산책을 갔다 와서 속옷을 갈아입는데 문득 오른쪽 좌골이 아무렇지도 않다. 오랜 상처가 완치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조금도 무리가 없다. 코로나 전이었는데, 예매했던 고속버스 차 시간에 가까스로 도착해 놓치지 않으려고 급발진해서 뛰다가 넘어져서 다친 후로 계속 이상 증세가 있었던 부위다. 처음엔 한동안 물리 치료도 받고 조심조심했는데도 세모근이 깊이 손상됐는지 말끔히 낫지 없어,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건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이렇게 나았다. 시간이 약이다.
그러고 보니 히말라야 트래킹 도중에 미끄러져 손을 잘못 짚으면서 삐끗한 왼손 중지도 거의 다 아문 것 같다. 생각보다 회복이 더뎌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지금 요리조리 움직이고 만져 보니 괜찮다. 내가 잊고 있던 사이 내 몸의 해당 조직들은 열심히 복구 치유 작업을 벌이고 있었던 거다. 기특하다. 참고 기다리면 이뤄지는 게 있다.
인내. 생각해 보면 나는 뭔가를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데 익숙한 편이다. (물론 그래선지 마구 시작하지는 않는다.) 비유를 하자면 단거리 속주보다는 장거리 마라톤이나 트래킹 같은 것이 맞는다. 아마 중세 때 대성당을 짓는 일이 맡겨졌다면 무던히 해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 경험으로는 학습 효과도 큰 것 같다. 고진감래의 의미를 나는 일찍부터 조금씩 맛을 안 것 같다. 나는 추구할 만한 결과를 목표로 삼되, 결국에는 실제 결과가 달성되건 말건,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그럴 때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나 풀어야 할 숙제를 상대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이 싫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기보다는, 그러니까 마치 목돈을 쥐기 위해 먹지 않고 입지 않고 견뎌야 한다는 자린고비의 마음가짐이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투자가의 사고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 사이에 과정 자체가 즐거워지는 것이다. 대개는 뇌가 느끼는 정신적인 즐거움일 텐데, 수고나 고통 쪽을 맡아야 하는 몸도 수긍하고 기꺼이 자기 몫인양 그에 따른 부담을 떠안는다. (사실은 몸이 느끼는 수고나 고통도 뇌로 가서 느끼게 되고, 뇌도 몸의 일부다. 우리가 막연히 뇌와 몸을 구분할 뿐이다.) 

그런데,
God bless You라는 말로 상대를 축복했던 중세 유럽인과 May the force be with you라는 말로 행운을 비는 SF 속 인물(그리고 실제로 이 인사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만 출신 화이트해커 오드리 탕)은 뭐가 다를까?

흐르는 물을 댐으로 가두면 저수지가 된다. 그렇게 고인 물은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그로 인해 부작용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글은 생각을 잡아 틀에 가두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댐과 글, 둘은 어떻게 다를까?

문득 이곳이 대홍수 때 지어졌다는 '노아의 방주' 미니어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플로우>에 나오는 보트 같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거나 상태를 되돌리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적응력을 키우고 그런 범위에서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글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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