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과일
2025-04-28 09:47
#제철
일요일 월악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1095미터.
친구가 배낭에서 준비해온 걸 꺼냈다.
꼬마 김밥, 참외...
동네 맛집에서 산 듯한 꼬마 김밥은 찍어 먹을 소스를 별도의 작은 플라스틱 통에 포장했는데 그게 눌려 터졌는지 포장 봉지에 질척하게 새 나와 있다. 그래도 나눠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한 친구의 정성에 마음이 따뜻하게 젖어 든다.
"참외가 참 달다."
"요즘 제철이니까."
고교 동기 동창인 친구는 초등학생 때까지도 집의 농사를 거들었다고 언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농산물에 관한 한 나보다 몇 수 위다.
'제철'이라는 말이 맘속에서 맴을 돈다.
나도 제철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농협 마트가 가까이에 있어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과일 코너를 먼저 들른다. 아침 식사도 제철 과일과 야채와 너트, 건포도를 넣은 샐러드일 때가 많다.
사실은 산행을 위해 나도 몇 가지를 준비하면서 마트에서 사둔 샛노란 참외를 배낭에 넣어갈까 잠깐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깎아서 먹는 번거로움이 떠올라 관뒀다. 그런데 친구는 작은 접이 주머니칼까지 함께 준비해 와서 척척 먹기 좋게 껍질을 깎은 뒤 반으로 갈라 내게 내민다. 작은 '번거로움' 때문에 나는 쉽게 포기한 것을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작지만 큰 것을 산에 와서 또 하나 배운다.
#제자리
얼마 전 헌재의 탄핵 심판 최종 심리 때 국회 소추인단측 변호인 누군가가 '헌법의 말과 풍경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바란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1980년대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에 나오는 가사를 차용한 말이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그는 최후 변론 마지막 단락을 이렇게 장식했다.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요일 월악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1095미터.
친구가 배낭에서 준비해온 걸 꺼냈다.
꼬마 김밥, 참외...
동네 맛집에서 산 듯한 꼬마 김밥은 찍어 먹을 소스를 별도의 작은 플라스틱 통에 포장했는데 그게 눌려 터졌는지 포장 봉지에 질척하게 새 나와 있다. 그래도 나눠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한 친구의 정성에 마음이 따뜻하게 젖어 든다.
"참외가 참 달다."
"요즘 제철이니까."
고교 동기 동창인 친구는 초등학생 때까지도 집의 농사를 거들었다고 언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농산물에 관한 한 나보다 몇 수 위다.
'제철'이라는 말이 맘속에서 맴을 돈다.
나도 제철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농협 마트가 가까이에 있어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과일 코너를 먼저 들른다. 아침 식사도 제철 과일과 야채와 너트, 건포도를 넣은 샐러드일 때가 많다.
사실은 산행을 위해 나도 몇 가지를 준비하면서 마트에서 사둔 샛노란 참외를 배낭에 넣어갈까 잠깐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깎아서 먹는 번거로움이 떠올라 관뒀다. 그런데 친구는 작은 접이 주머니칼까지 함께 준비해 와서 척척 먹기 좋게 껍질을 깎은 뒤 반으로 갈라 내게 내민다. 작은 '번거로움' 때문에 나는 쉽게 포기한 것을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작지만 큰 것을 산에 와서 또 하나 배운다.
#제자리
얼마 전 헌재의 탄핵 심판 최종 심리 때 국회 소추인단측 변호인 누군가가 '헌법의 말과 풍경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바란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1980년대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에 나오는 가사를 차용한 말이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그는 최후 변론 마지막 단락을 이렇게 장식했다.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는 대학 시절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며 '정의justice'라는 말이 '적정하다just'에서 왔음을 알고 적잖이 신기해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적정함, 적절한, 적합함, 적지적소, 적임자, 적정가, 적합 같은 단어를 유심히 생각할 때가 많았다. 무엇이 적정할까, 무엇이 적절할까, 무엇이 적합할까, 무엇이 적실할까. 그런 제자리, 적지적소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도 한다.
#최적의 말
친구의 아들은 미국 대학원에서 AI 기계학습과 보안 문제를 공부한 후 지금 예정된 직장의 입사를 앞두고 있다.
그 아들을 비롯한 유학생들이 요즘 미국의 청소년을 위한 소설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어휘와 표현들을 공부하기 위해서란다.
지금 AI 연구자나 사용자의 과제는 이 강력한 기계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지시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바꿔 말해 사람의 의도 대로 기계가 정확히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게 정교한 언어로 지시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를 사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이런 차원의 미세한 뉘앙스를 살린 어휘와 표현 능력이다. 이해가 간다. 결국 말의 표현에 있어 정교함이 관건이다.
AI뿐만이 아니다. 사실은 인간 관계도 사회 생활도 (심지어 인간 개인의 심성과 행실까지도 어느 정도는) 서로 주고받는 말, 글, 언어의 정교함과 섬세함, 경우 바름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제철, 제때, 제자리, 제 역할, 제 몫, 제 모습, 제대로 된, 제대로 한다는 것,
적합한 말과 표현의 사용,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친구의 아들은 미국 대학원에서 AI 기계학습과 보안 문제를 공부한 후 지금 예정된 직장의 입사를 앞두고 있다.
그 아들을 비롯한 유학생들이 요즘 미국의 청소년을 위한 소설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어휘와 표현들을 공부하기 위해서란다.
지금 AI 연구자나 사용자의 과제는 이 강력한 기계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지시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바꿔 말해 사람의 의도 대로 기계가 정확히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게 정교한 언어로 지시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를 사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이런 차원의 미세한 뉘앙스를 살린 어휘와 표현 능력이다. 이해가 간다. 결국 말의 표현에 있어 정교함이 관건이다.
AI뿐만이 아니다. 사실은 인간 관계도 사회 생활도 (심지어 인간 개인의 심성과 행실까지도 어느 정도는) 서로 주고받는 말, 글, 언어의 정교함과 섬세함, 경우 바름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제철, 제때, 제자리, 제 역할, 제 몫, 제 모습, 제대로 된, 제대로 한다는 것,
적합한 말과 표현의 사용,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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