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들이는 것과 낭비하지 않는 것

더듬이
2025-05-01 07:25

"아니 또 나무를 저렇게 심어 놨어."
"그러게, 나무를 심었으면 꼭꼭 밟아줘야 하는데, 모 심듯 꽂고는 흙만 대충 덮고 가니 저 모양이지."
"내가 당겨 보니까 그냥 쑥쑥 뽑혀. 저래 갖고선 금방 죽고 말아."
"어째 매번 저럴까요."
"용역들이 하는 일이 그렇지."
"그래야 때가 되면 또 와서 나무 심고 돈 받아 가지. 하는 짓들 하곤."
"내가 구청 담당자 보면 단단히 이야기할게."
사람들은 화단의 나무를 다시 심기 시작했다.

다들 많은 일들을 한다. 그래서 바쁜 세상이다. 그래도 더 많은 일을 하겠다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자신하고 서로서로 몰아간다.
그 일의 대부분이 단기 프로젝트식이다. 정해진 시간에 어떻게든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 그래서 늘 바쁘다.
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때가 되면 반복한다. 그리고 쏟아지는 문제점들을 고치고 바로잡고 보완하는 것이 또 다른 일이 된다. 그래서 또 바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일이 '제대로' 될지, 그 결과는 어떨지에 대한 충분한 생각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런 생각은 눈앞의 프로젝트에 방해가 되기에 서로 피하고 묵인한다.
정작 무슨 일이든 그 일에, 그 대상에, 그 상대에게 기울여야 할 합당한 관심을, 충분한 시간을, 필요한 노력을 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가능한 대로 돈은 얼마든지 들인다. 그것이 경제를 돌아가게 한다고 경제학자들은 설명한다.)

영어를 공부하다 squander라는 단어에 꽂힌 적이 있다.
자신이 가진 가치 있는 무언가를 헛되이 낭비하거나 어리석게 탕진한다는 뜻이다.
그 단어에 꽂힌 때는, 바로 내 상태가 그런 예감에 불안해 하던 시절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분주한 내 삶이 squander라는 단어의 뜻처럼, 어딘가 금이 간 독처럼 줄줄 새 나가는 것이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다.

무엇이든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요구하는 적정한 주의와 정성,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있다.
삶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내가 생각하는 낭비의 기준은 흔히 기업이나 국가가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산업적인 생산성이나 효율과는 다르다. 오히려 상반된다고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종종 의심과 저항의 형태를 띤다.
그럴 때마다 필경사 바틀비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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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봉천동 에리히프롬 | 12일 전

점점 더 많은 일을 요구하는 사회를 느끼는 요즘, 더욱 와닿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