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곳
2025-05-03 11:1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인지 아세요?"
"네, 그렇습니다. 보고타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곳이 어딘지 아세요?"
"아하, 그건 모르셨군요. 네, 바로 비가 내리는 보고타이랍니다. 하하하."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시내를 안내해 주던 사내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입담에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정겹기 그지없어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 가이드들이 상비하고 다니는 유머 화법 중 하나였지만, 조금도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햇빛이 구름이 가려 흐릿한 날이었지만 비가 그친 뒤라 촉촉해서 오히려 청초한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콜롬비아 하면 그날의 아침의 촉촉함을 떠올린다.
함께 떠오르는 추억이 여럿 있지만, 그중 하나가 사방에서 환히 웃음 짓는 꽃들이었다.
호텔 안은 물론 문에도 매일 아침 생화가 바뀌어 꽂혀 있었다.
세계적인 꽃 수출국답게 이곳은 생화가 조화보다 더 싸다고 했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나무며 화초들이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았다.
지리적으로 좋은 자리에 기후 환경이 워낙 좋아 커피가 잘 자라고 화초가 잘 자라는 나라다.
심지어 마약(코카인)의 원료인 양질의 코카도 잘 자라 국제적인 마약단으로도 유명하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입구에 길게 진열된 갖가지 화초들을 보며 문득 콜롬비아 생각이 났다.
비가 심하지 않게 내리다가 그친, 꼭 오늘 같은 아침이었다.
필요한 것들을 사서 집에 오는 동안 그것들이 소진될 때까지 살아야 할 날들을 생각한다.
어제 저녁 아는 분과 저녁을 먹으며 대화하다가 다니엘 카너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렀다.
90세에 스스로 '더 이상의 불필요한 불명예와 고통은 지속하지 않기로 했던 젊은 시절부터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며 스위스로 향했던 사람. 노벨상이라든가 학문적 업적에 대한 세상의 호평가 찬사가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매일 아침 자신의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즐거워서 했을 뿐이라고 했던 사람. 그의 마지막 결정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았다.
"내 생각도 그래. 나는 어떤 연명 치료도 거부할 생각이야."
"연명 치료의 거절과 적극적인 자살 결정은 좀 다른 차원 아닐까요? 더구나 피치 못할 정도로 삶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있었던 것은 아닌 상황에서 자살을 결정한다는 것은..."
"태어날 때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죽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출생부터 양육 기간을 거치기까지, 그러니까 자의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대개는 부모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까맣게 잊는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삶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
"살 만하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는 것은 일종의 편의주의의 연장처럼 들려요. 생명이란 게 내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기에 죽음도 내가 함부로 어찌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어려워도 살아내야 한다는 어떤 책무감 같은 것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생명을, 목숨을, 삶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에게 존엄한 것은 뭐가 남을까요?"
"나이가 들어 생명을 이어가는 게 주변 사람에게 폐가 될 경우에는 스스로 끝내는 게 이타적인 결정이고,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최종 결정권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건 분명해요. 다만, 삶에 대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은 (그 누가 뭐라던) 자신에게 계속해서 남을 것 같아요."
돌아오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죽기 며칠 전 스스로 모든 곡기를 끊고 어느날 목욕재계 후 잠이 들어 영면했다는 친구의 할아버지 이야기며, 그 비슷한 옛 사람들의 선택과 결행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먼 길을 나서는 사람의 이미지다.
아침 일찍 동틀 무렵 배낭을 매고 갈 길을 나서는 사람의 뒷모습.
걸음을 내딛기 전 잠시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며 환히 웃음을 건네는 얼굴까지 추가한다면 더할 것이 없다.
그런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한다.
매체에서 쏟아지는 뉴스가 소란스럽고 우울할수록 밝고 맑은 기억들로 나를 호위하게 하라.
"네, 그렇습니다. 보고타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곳이 어딘지 아세요?"
"아하, 그건 모르셨군요. 네, 바로 비가 내리는 보고타이랍니다. 하하하."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시내를 안내해 주던 사내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입담에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정겹기 그지없어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 가이드들이 상비하고 다니는 유머 화법 중 하나였지만, 조금도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햇빛이 구름이 가려 흐릿한 날이었지만 비가 그친 뒤라 촉촉해서 오히려 청초한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콜롬비아 하면 그날의 아침의 촉촉함을 떠올린다.
함께 떠오르는 추억이 여럿 있지만, 그중 하나가 사방에서 환히 웃음 짓는 꽃들이었다.
호텔 안은 물론 문에도 매일 아침 생화가 바뀌어 꽂혀 있었다.
세계적인 꽃 수출국답게 이곳은 생화가 조화보다 더 싸다고 했다.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나무며 화초들이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았다.
지리적으로 좋은 자리에 기후 환경이 워낙 좋아 커피가 잘 자라고 화초가 잘 자라는 나라다.
심지어 마약(코카인)의 원료인 양질의 코카도 잘 자라 국제적인 마약단으로도 유명하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입구에 길게 진열된 갖가지 화초들을 보며 문득 콜롬비아 생각이 났다.
비가 심하지 않게 내리다가 그친, 꼭 오늘 같은 아침이었다.
필요한 것들을 사서 집에 오는 동안 그것들이 소진될 때까지 살아야 할 날들을 생각한다.
어제 저녁 아는 분과 저녁을 먹으며 대화하다가 다니엘 카너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렀다.
90세에 스스로 '더 이상의 불필요한 불명예와 고통은 지속하지 않기로 했던 젊은 시절부터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며 스위스로 향했던 사람. 노벨상이라든가 학문적 업적에 대한 세상의 호평가 찬사가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매일 아침 자신의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즐거워서 했을 뿐이라고 했던 사람. 그의 마지막 결정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았다.
"내 생각도 그래. 나는 어떤 연명 치료도 거부할 생각이야."
"연명 치료의 거절과 적극적인 자살 결정은 좀 다른 차원 아닐까요? 더구나 피치 못할 정도로 삶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있었던 것은 아닌 상황에서 자살을 결정한다는 것은..."
"태어날 때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죽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출생부터 양육 기간을 거치기까지, 그러니까 자의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대개는 부모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까맣게 잊는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삶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
"살 만하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는 것은 일종의 편의주의의 연장처럼 들려요. 생명이란 게 내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기에 죽음도 내가 함부로 어찌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어려워도 살아내야 한다는 어떤 책무감 같은 것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생명을, 목숨을, 삶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에게 존엄한 것은 뭐가 남을까요?"
"나이가 들어 생명을 이어가는 게 주변 사람에게 폐가 될 경우에는 스스로 끝내는 게 이타적인 결정이고,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최종 결정권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건 분명해요. 다만, 삶에 대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은 (그 누가 뭐라던) 자신에게 계속해서 남을 것 같아요."
돌아오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죽기 며칠 전 스스로 모든 곡기를 끊고 어느날 목욕재계 후 잠이 들어 영면했다는 친구의 할아버지 이야기며, 그 비슷한 옛 사람들의 선택과 결행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먼 길을 나서는 사람의 이미지다.
아침 일찍 동틀 무렵 배낭을 매고 갈 길을 나서는 사람의 뒷모습.
걸음을 내딛기 전 잠시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며 환히 웃음을 건네는 얼굴까지 추가한다면 더할 것이 없다.
그런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한다.
매체에서 쏟아지는 뉴스가 소란스럽고 우울할수록 밝고 맑은 기억들로 나를 호위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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