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계절이 72가지나 된다는 글을 읽었다. 우리도 24절기가 있다. 중국에서 건너온 계절 계산법이다. 일본은 그걸 더 잘개 쪼갠 것이다. 계절에 대한 예민함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역으로 섬세한 기후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일상의 토대도 될 것 같다. 그런 감각은 기후 위기(를 넘어 재난 속)에 봉착한 지금 세상에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관련 자료를 좀 찾아 봤다. 내 기억 창고 구축 차원에서 정리를 해 둘 필요를 느낀다. 인간은 일찍부터 시간의 흐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다. 생존과 번영(무엇보다 농경과 목축)에 필요하니까. 그걸 한자권에서는 역법(曆法)이라 불렀다. 영어로 캘린더다. 대개 어느 문화권이나 하늘의 해와 달과 별, 즉 천체의 움직임에 맞춰 계산을 했다. 음력은 달의 운행을 토대로 한 날짜 계산법이고, 양력은 해의 운동을 따라 계산하는 체계다. 지금 쓰는 양력은 서양에서 온 그레고리력이다. 유럽에서 처음 제정 반포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이름을 딴 것인데, 현재 세계 표준으로 사용된다. 이에 따르면 1년이 365.2425일인데 윤달과 윤년으로 오차를 조정한다. 전통적으로는 주로 음력을 사용해 왔다. 멀리 있는 태양은 모습이 거의 일정하고, 주기도 1년이어서 변화를 알기가 어려운 반면, 달은 날마다 변하고 주기도 30일 남짓해 시간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날짜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많이 채택했다. 하지만 기후나 날씨에 관한 한 태양빛의 영향과 지구의 자전/공전에 따른 결과이지, 달의 운동과는 거의 무관하다. 그렇다 보니 달만 봐서는 농사를 언제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양력(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계산법)의 요소를 도입한 태음태양력이 따로 생겼다. 이른바 1년을 24개로 나눈 절기다. 경칩, 입춘, 처서, 하지, 추분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24절기는 음력이 아닌 양력과 잘 맞는다. 24절기는 중국에서 유래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조선 시대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각각 6개의 절기로 나눠 모두 24절기를 이룬다.
24절기는 일본에도 8세기경 도입되었는데, 자신들의 자연과 기상 현상, 동물 이동, 식물 주기 등에 맞춰 더 세분화했다. 1년을 약 5일 간격으로 총 72개로 나누고 절기에 맞춰 이름을 붙였다. 절기의 정확한 날짜는 연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때그때 기후를 잘 반영한다. 일본의 72 소절기는 명칭만 봐도 다분히 시적이다. 첫 복숭아 꽃망울이 피어나는 때, 습한 바람이 따뜻함을 가져오는 때, 매화꽃이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는 때, 첫 아침 안개가 떠오를 때, 참새의 노래소리가 하늘을 채울 때... 기계적인 숫자로 표시된 날보다 훨씬 자연 친화적이고 인간적이지 않은가. (실제로 일본의 단시인 하이쿠는 계절어를 넣는 규칙 등이 이런 소절기 문화와 함께 간다.) 이런 미세 계절에 대한 관심은 일본 특유의 미적 감각을 형성했고 다양한 문화 예술 공예 음에 반영되어 왔으며 지금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자 이름과 뜻을 모아 봤다.
입춘(立春)
2월 4–8 東風解凍동풍이 얼음을 녹인다
2월 9–13 黄鶯睍睆꾀꼬리가 산속에서 노래하 시작한다
2월 14–18 魚上氷 물고기가 얼음에서 나온다
우수(雨水)
2월 19일–23일 土脉潤起 비가 땅을 적신다
2월 24일–28일 霞始靆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3월 1일–5일 草木萠動 초목에 싹이 트다
경칩(啓蟄)
3월 6일–10일 蟄虫啓戸 땅속 벌레들이 대지의 문을 연다
3월 11일–15일 桃始笑 복숭아꽃 웃기 시작한다
3월 16일–20일 菜虫化蝶 애벌레가 나비가 된다
춘분(春分) 3월 21일~25일 雀始巣 참새가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3월 26일~30일 櫻始開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3월 31일~4월 4일 雷乃発声 멀리서 천둥이 친다
청명(清明)
4월 5일~9일 玄鳥至 제비가 날아든다
4월 10일~14일 鴻雁北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간다
4월 15일~19일 虹始見 무지개가 보인다
곡우(穀雨)
4월 20일~24일 葭始生 갈대가 싹을 내기 시작한다
4월 25일~29일 霜止出苗 서리 그치고 모종이 자란다
4월 30일~5월 4일 牡丹華 모란꽃이 핀다
입하(立夏) 5월 5일~9일 蛙始鳴개구리가 울기 시작한다
5월 10일~14일 蚯蚓出 벌레가 땅 위로 나오기 시작한다
5월 15일~20일 竹笋生대나무 싹이 돋기 시작한다
소만(小満) 5월 21일–25일 蚕起食桑 누에가 뽕잎을 먹기 시작한다
5월 26일–30일 紅花栄 잇꽃이 핀다
5월 31일–6월 5일 麦秋至 밀이 무르익는다
망종(芒種) 6월 6일–10일 蟷螂生 사마귀가 부화해서 나온다 6월 11일–15일 腐草為螢 썩은 풀이 반딧불 된다
6월 16일–20일 梅子黄 매실이 노랗게 익는다
하지(夏至)
6월 21일~26일 乃東枯 하고초가 시든다
6월 27일~7월 1일 菖蒲華 창포꽃이 핀다 7월 2일~6일 半夏生 반하가 싹튼다
소서(小暑)
7월 7일~11일 温風至따뜻한 바람이 분다
7월 12일–16일 蓮始開 연꽃이 피기 시작한다 7월 17일–22일 鷹乃学習 매가 나는 법을 배운다
대서(大暑)
7월 23일–28일 桐始結花 오동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7월 29일–8월 2일 土潤溽暑 흙이 습하고 공기가 덥다
8월 3일–7일 大雨時行 때때로 큰 비가 내린다
입추(立秋)
8월 8일–12일 涼風至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8월 13일~17일 寒蝉鳴저녁에 매미가 운다
8월 18일~22일 蒙霧升降 두꺼운 안개가 내려온다
처서(処暑) 8월 23일~27일 綿柎開 면화꽃이 핀다
8월 28일–9월 1일 天地始粛더위가 시작된다
9월 2일–7일 禾乃登 쌀이 익는다
백로(白露)
9월 8일–12일 草露白 풀잎 이슬이 반짝인다
9월 13일–17일 鶺鴒鳴 백로가 노래한다 9월 18일–22일 玄鳥去 제비가 떠나간다
추분(秋分) 9월 23일–27일 雷乃収声 천둥소리가 그친다
9월 28일–10월 2일 蟄虫坏戸 곤충들이 땅속에 숨는다
10월 3일–7일 水始涸농부들이 논을 말리기 시작한다
추로(寒露)
10월 8일–12일 鴻雁来 기러기가 돌아온다
10월 13일–17일 菊花開 국화꽃이 핀다
10월 18일–22일 蟋蟀在戸 귀뚜라미가 문 주변에서 운다
서강(霜降) 10월 23일–27일 霜始降 첫 서리가 내린다
10월 28일–11월 1일 霎時施 때때로 가랑비가 내린다
11월 2일–6일 楓蔦黄 단풍과 덩굴이 노랗게 변한다
입동(立冬)
11월 7일–11일 山茶始開 동백꽃이 피기 시작한다
11월 12일–16일 地始凍땅이 얼기 시작한다
11월 17일–21일 金盞香 수선화가 피어 향기가 난다
소설(小雪) 11월 22일–26일 虹蔵不見 무지개가 숨어 보이지 않는다
11월 27일–12월 1일 朔風払葉 북풍이 나무의 잎을 날린다
12월 2일–6일 橘始黄 귤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다
대설(大雪)
12월 7일–11일 閉塞成冬 추위가 깊어지며 겨울이 시작된다
12월 12일–16일 熊蟄穴 곰이 굴에 들어간다
12월 17일–21일 鱖魚群 연어가 무리 지어 올라간다
동지(冬至) 12월 22일–26일 乃東生 하고초의 싹이 튼다
12월 27일~31일 麋角解 사슴의 뿔이 떨어진다
1월 1일~4일 雪下出麦 눈 밑에서 밀이 나온다
소한(小寒) 1월 5일~9일 芹乃栄미나리가 한창이다
1월 10일~14일 水泉動 샘의 물이 녹는다
1월 15일~19일 雉始雊 꿩이 울기 시작한다
대한(大寒)
1월 20일~24일 款冬華 머위가 꽃을 피운다
1월 25일~29일 水沢腹堅 계곡물에 얼음이 두꺼워진다
1월 30일~2월 3일 鶏始乳닭이 알을 낳기 시작한다
자연과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 방식 중 하나는 계절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이 72절기로 계절의 변화를 세심하게 읽어온 것은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