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 생각의 소화불량

봉천동 에리히프롬
2025-05-10 15:34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거리'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심하다.
그나마 위는 '자율신경계'라서 인지하지 않아도 제 할 일을 한다. 그래서 18시 이전에 섭취한 음식물은 수면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반면, 생각거리를 뇌로 소화시키는 행위는 내가 인지하고 애쓰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은 물론 수일 전에 생긴 '생각거리'도 소화되지 않은 채 수면을 방해한다.

우리가 평소 '생각거리'를 소화할 시간이 없는가? 아니다, 생각에는 너무 큰 수고가 드는 나머지 '스마트폰, 게임, 술, 일'로 도피하여 시간 죽이기(killing time)를 하는 게 문제다. 그리고 의외겠지만 이 생각 도피처 목록에는 '독서'도 들어갈 수 있다. 내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잠을 청하기 위해 스마트폰 혹은 책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내 눈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때, 기다리고 있던 '생각거리'들이 모습을 드러내 자신을 소화시켜 달라고 아우성친다. 이제 잠으로 밖에 도피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소화되지 않고는 잠에 들지 않는다. 난감한 교착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은 흘러간다. 다시 침대 옆에 책으로 손을 뻗는다. 읽다가 내려놓는다. 반복된다. 지쳐 잠들 때까지 말이다.

수면 부족으로 피곤해지면 생각이 더 어려워지고, 편안한 '킬링 타임'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면 '생각거리'들은 방치되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더군다나 '생각거리'는 대부분 현실에서 겪는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생각거리' 소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실 문제도 방치되고 악화되어 더 많은 '생각거리'를 불러오게 된다.

이런 '생각거리' 들은 시간이 흘러 구성을 이루고 있던 뉴런이 해체되기 전까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고 잊히는 시간 보다 새로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우리는 그 해법을 알고 있다.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다. 바로 틈틈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다. 출근길이든 집에서든 스마트폰과 책을 내려놓고 온전히 생각에 빠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맞다. 어렵다. 내 주의를 끌어 돈을 벌려는 거대한 산업 구조를 비롯해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겠나? 굴복할 것인가? 아니 저항해야 한다.

'생각거리'를 정리하는데 가장 유용한 건 바로 '쓰기'다. (내가 가장 애용하는 글쓰기 기법은 '프리라이팅'이다) 마음먹고 글을 쓴 날은 잠이 잘 온다. AI에게 모든 형태의 '쓰기'를 넘기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 또한 나의 '생각거리' 하나를 소화시킨 과정이고, '오늘의 발견' 코너의 역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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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더듬이 | 12일 전

맞아요.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on-air | 7일 전

수면부족. 대공감합니다. 생각거리로 충분히 괴로운 중입니다. 생각에 빠지는 연습! 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