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순환

고요한
2025-05-12 09:20

고요한 곳에 왔다.
비온 뒤라 모든 것이 차분하다.
바람도 별로 없다.
정신까지 맑아지는 것 같아 좋다.
이렇게 마음이 중심으로 모일 때 나는 나인 것 같다.
평소에 얼마나 산만하게 지내는지 알겠다.
정신없이 산다는 말이 뭔지도.

우리는 삶을 이야기로 이해하고 살아간다.
개인의 자전적 서사는 집단적 삶의 이야기를 밑그림으로 한다.
집단적 삶의 이야기의 원형이 신화다. 
우리는 신화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신화를 사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인생은 망망대해를 노 저어 가는 항해다.
타고 가는 배가 자신의 이야기이고, 함께 타고 가는 배가 우리의 이야기이다.
인생은 망망대해와 같아서 배에서 내릴 수는 없다.
항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배를 고쳐 가며 나아갈 뿐이다.

한 번만 읽어도 좋을 책은 읽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책일 가능성이 크다.
반복해서 읽게 되는 책이야말로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일 가능성이 크다.
명화, 명곡, 명작, 명소가 그렇듯이. 

우리 인간은 참 섬세하고 예민한 존재여서 선의와 또다른 선의가 만나더라도 어떤 이유에선가 불협화가 일어나곤 한다.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이라는 책의 부제는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은 왜 중요한가'이다.
우리는 '대가'를 바라고 치르는 방식의 관계(거래)에 익숙하다.
그 대가가 반드시 돈이나 현물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선물도 제대로 보답받지 못할 때는 주는 사람은 상처를 받고 소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물은 순환 관계이며, 그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선물을 주고도 보답을 받지 못할 때는 마치 '수신자 불명' 처리된 편지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준 것이 진정한 선물의 정신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뜻밖의 방식으로 준 사람에게 다른 선물로 돌아가지 않을까.
선의는 분명히 어느 누군가의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믿을 만한 숱한 증언들과 짧지 않은 인생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선물>에 이런 대목도 나온다.
선물은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이기보다
(이 경우엔 득실을 따지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
셋 이상이 옆으로 돌리는 형태가 이상적이다.
선물은 송신자와 수신자가 대칭 관계가 아닐 수 있다.
선물을 줄 때는 상대에게 곧바로 보답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래서 보답받지 못했을 때는 상심하게 되지만
어쩌면 그는 다른 누군가에게서는 선물을 받기만 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주는 누군가가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대가 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잊고 지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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