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스쿱

더듬이
2025-05-14 07:12

오래전 할머니는 밥이 다 되어 솥에 김이 모락모락 날 때쯤이면 가장 먼저 아버지 전용 밥그릇에 밥을 수북히 퍼 담아서는 아랫목에 묻어 두곤 하셨다. 어머니 역시 뭔가 따로 먹을 것이 생기면 맨 먼저 맏아들 몫을 따로 챙겨 두시는 게 몸에 밴 듯했다. 그럴 때는 날 선 매의 눈이 되는 동생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원망스럽게도 일말의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장손 우선'이라는 불문율은 지금처럼 의심 받고 지탄까지 받는 고루한 질서가 아니라 누구나 의심 없이 내면화해야만 하는 넘사벽의 규칙이었다. (희한하게도 어릴 때부터 매사에 형평에 관한 것은 눈에 잘 들어온다. 뭔가를 둘로 나눠 먹을 때도 어느 쪽이 더 큰 쪽인지를 단번에 정확히 파악해내지 않던가)

학교 앞 아이스크림 장수는 아이들이 코 묻은 돈을 건네면, 마치 당구공 크기의 양철공을 절반으로 자른 것 같은 주걱도 아닌 숟가락도 아닌, 요즘에서야 아예 우리말로 자리 잡은 듯한 스쿱(영어 scoop 어원을 찾아보니 유럽에서 사용한 삽이다)으로 얼음 반 설탕 반 우유 아주 약간으로 휘저어 만든 아이스크림을 퍼서 고깔 모양의 웨하스 콘에 퍼담아 주었다. 지금도 배 어쩌고 라 어쩌고 하는 아이스크림 점에 가면 점원이 비슷한 도구로 훨씬 더 화려하고 다채로워진 색상과 재료의 아이스크림을 수북이 담아 준다. 수북이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부디 점원이 손에 쥔 스쿱을 좀 더 힘 있게 꾹꾹 눌러 퍼서 담긴 둥근 눈덩이 모양의 아이스크림에 한 치의 빈틈도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 시간에 대해 생각하며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뭔가를 따로 퍼 담아 두는 것. 내 시간도 뭔가 소중한 것을 위해서는 그렇게 확실히 떼 두어야 할 것만 같다. 마치 어릴 적 방학만 되면 맨 먼저 (대개는 거부 못할 숙제로) 시간표를 짜듯이. 그때는 마치 원형의 피자에 금을 내어 자르듯이 24시간을 토막토막 내 하루에 해야 할 것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곤 했다. 계획대로 실행에 옮길 리는 만무했지만 그래도 나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꽤나 신경이 쓰이게 하는 장치였다. 나와의 약속이었고, 그때만 해도 무엇보다 약속은 지켜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훈육을 받은 상태인 데다, 실제로도 단짝 친구가 약속을 어기는 것만큼 속 상하는 일도 없다는 걸 체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사용하는 단어와 그 용법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우리는 상당 부분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생각을 돕기도 하고 제약도 한다. 그런 만큼 언어의 한계가 세계를 경계 짓기도 한다. 어떤 욕구에 의해 그 경계와 한계의 제약을 넘어서려고 할 때 기존의 말을 의식적으로 검토하고 모색하고 궁리하고 다시 짓게 된다. 말은 생각을 돕고, 글은 말을 돕는다. 그러니까 글은 생각을 잘 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요구하는 적정 시간이 있다. 그 점에 충실했을 때 일은 제대로 된다. 일은 제대로 되었을 때 제 빛을 발한다. 그것을 희생시킬 때, 희생의 대가는 무엇인지,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타협해야 하는 것과 타협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분별력, 그것만큼은 타협해선 안 된다.

*이제는 '오늘의 발견'이 '멘탈 헬스장' '멘탈 피트니스센터' '멘탈 트레이닝센터' 같은 곳으로 다가온다.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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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on-air | 7일 전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요구하는 적정시간. 타협하지 않을 것들을 잘 분별하는일 제가 잘 기억해야 하는 것이네요. 또다시 깨닫고 갑니다. .
아버지를 위한 전용밥그릇. 저도 기억합니다. 빈틈없이 꽉 채워담은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밤...

더듬이 | 7일 전

심야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이건 타협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참 인생에 쉬운 게 없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