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레이로 인간을 안다 할 수 있나

더듬이
2025-05-15 07:47

저편에서 까치들이 유난히 시끄럽게 짖는다. 말 그대로 떼로 짖고 있다. 이런 적은 처음 있는 일이다. 다가갔다. 가만히 보니 나무 아랫쪽에 뭔가가 보인다. 크지 않은 짐승이 웅크리고 있다. 검정에 가까운 짙은 회색의 고양이다. 비를 피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에 까치들이 분주하게 모여든다. 용감한 녀석은 고양이 가까이까지 다가가서 위협까지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까치는 그 정도로 용감하다(때론 극성스럽고 사납기까지 하다). 까마귀 떼와도 대적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지지 않는다. 까치가 나무 위의 청설모를 합동 공격해서 바닥으로 떨어지게 한 것을 본 일도 있다. 이럴 때는 대개 덩치가 다 자란 성체라기보다는 한눈에도 아직은 덜 자란,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 같아 보이는 중간 체구에 몸 동작이 가볍고 그만큼 날랜 녀석들 여러 마리다. 그러고 보니 양재천 변에서는 언젠가 그런 까치들이 불링인지 주짓수인지 모를 격투기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일도 있다. 잠시 그러고 마는 줄 알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내가 보고 있는데도 그칠 줄을 몰랐다. 5분은 넘게 지속됐다. 동영상으로 촬영도 할 정도로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사람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가령 엑스레이를 찍는다고 생각해보자. 흑백 사진에는 사람의 뼈대가 선명하게 나온다. 사람의 형상을 알아볼 수 있다. 또 다른 유형의 정밀 기기가 있다. 이것으로 인간의 뼈대 이외 다른 성분까지 파악할 수 있으면 보다 세부적인 인간 형상이 포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두고 인간의 신체적 특징은 알 수 있겠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사람의 생각을 직접 듣거나 언행으로 미뤄 해석해야 알(이해할) 수 있다. 전자는 과학적 접근이고 후자는 인문학적 접근이다. 전자는 모든 것을 인과 관계로 설명하려 하지만, 후자는 행위자 내면의 목적과 의도와 이유로 해석하려 한다. 전자는 대상으로, 후자는 주체로 본다는 얘기다.
누구나 인생을 주체로 살고 싶어 한다. 그게 인간이다.
한갓 어떤 대상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대상화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접근 방식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게 지배적이다.
인간을 대상화할 때 인과관계로 파악한다. 그런 접근이 필요할 때도 있다. 병을 고치는 의학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만 볼 때 인간의 서로에 대한 주체성(의 존중)은 사라진다.
인과관계에 대한 앎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앎을 상호 주체적으로, 주체적 삶에 기여하도록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전등을 들고 물건을 찾는 사람이 있다. 전등 불빛이 닿고 그것으로 밝아지는 곳만 열심히 찾는다. 전등 불빛이 미치지 않거나 닿지 못하는 곳은 아예 없다고 여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과학주의는 관찰과 측정이라는 자기 잣대로만 세상을 파악하려는 위험이 있다.

아침 산책길에 올라가다가, 운동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고 연결되고 정리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떤 것은 적어 두고 싶은 것들이 있다.
문제는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처음의 많은 생각은 어느새 달아나 버리고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그럴 때는 애를 쓴다고 쉽게 떠오르고 하지는 않는다. 무심코 딴 생각을 하다 보면 불쑥 묻혔던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샤워를 할 때 불현듯 한참 전에 했다가 사라진 좋은 생각들이 신기하게도 속속 다시 떠오를 때가 많다. 유레카! 왜 그럴까. 이 문제를 오래 반복해서 생각해 왔다.

감각과 생각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출발점은 감각이다. 거기서 감정으로, 생각으로 나아간다. 감각에 머물러서는 생각에 이를 수 없다. 감각 단계에서도 생각이라는 것이 관여할 수는 있지만 극히 얕은 수준이다. 감각을 토대로 마음(정신)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면서 생각이 더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생각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감각을 차단해야 한다. 눈을 감고 심지어 귀를 막기도 한다. (백색 소음은 다른 문제다)
지금 미디어 환경은 끊임없는 감각 내용물(끊임없이 올라오는 뉴스 사진 숏츠 등등)로 생각을 하지 못하게, 아니 생각을 얕게 만든다.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게 길들여진다. 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인간다운 삶의 핵심, 즉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다에서 나온 말)의 핵심인 사피엔스를 지우려 한다.

X레이를 생각하다가..,
좋은 글, 좋은 작품을 남긴 사람은 X맨 같다는 생각을 한다. X란 미지의 수를 말하고, X맨이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대개는 복병, 숨은 첩자)을 말한다.
왜 좋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 X맨 같은가.
이 터무니없고 말 같지도 않아 보이는 세상, 그러니까 마구 자기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대개 힘을 추구하고 취하고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남들에게도 함부로 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살다가, 그렇지 않으면 '별 생각 없이'(이게 중요하다. '별 생각 없이') 그런 세상에 편승하거나, 무기력하게 순응해서 사는 사람들을 주로 보며 살다가도, 용기 있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 보여주고 나누기 위해 다른 것을 젖혀 두고 헌신한 사람들을 만나면,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모국에서 파견 나온 같은 소속의 스파이를 발견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마치 지구상에서 비슷비슷한 모양이나 형편으로 살고 있지만 내면의 삶의 논리가 통하는 사람은 곳곳에 숨어 있다가 우연히 조우하는 것 같아서다. 와, 우리 편이 여기 또 한 명 있었구나.
어떤 의미에서 4차원에서 온 '외계인들'이 지구 곳곳에 이따금씩 흩뿌려져 지구인과 같이 섞여 살다가 때가 되면 훌쩍 떠나는 건 아닐까.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