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더듬이
2025-05-27 08:03
인간은 시각이 모든 감각의 8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눈을 뺏기면 주의를 뺏기고 마음에 이어 정신까지 뺏기기 쉽다. 지금 사람들은 스크린에 시각의 코를 꿰어 주의도 마음도 정신도 내주고 있다. 그 안의 가상현실이 주변의 진짜 현실을 밀어내거나 조장하고 일그러뜨린다.

가상현실이란 현실을 가짜 그림(상)으로 구현한 것을 말한다. 오늘날 기술은 가상현실을 정교하게 만들어 진짜 현실과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아니 이제는 진짜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구현해 놓고 사람들의 시선을 뺏는다. 마치 인공 감미료에 길들여져 순수한 미감을 잃어가듯, 우리는 현실 감각을 잃어간다. 감각을 잃으면 생각의 질도 떨어진다. 얕아지고 불분명해지고 혼미해지고 급기야 분별력과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때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은 알고리즘이 내미는 손을 잡게 된다. 잡다 보면 놓지 못하게 된다.

생각은 감각의 연장이자 감각의 종합이다. 감각이 살아 있을 때 생각도 살아난다. 감각에 이어 생각이 더해질 때 삶은 또렷해지고 깊어지고 풍요로워진다. 비로소 자기 삶을 살 수가 있게 된다. 스크린의 요란한 다채로움에 시선을 빼앗겨 지낼 때는 알 턱이 없는 삶이다.

북클럽을 해 보니 단순히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 모임의 시간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시간 이외 일상을 바꿔야 한다. 삶의 방식에, 우선 순위에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있어야만 한다. 북클럽은 그런 식으로 참여자에게 일상의 변화를 촉구하고 이끈다. 그런 의미에서 북클럽은 생활의 작은 변화를 통한 큰 혁명의 방편이자 도구다.

몸의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헬스클럽에 가듯, 마음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북클럽에 간다. 헬스클럽에 가는 것이나 북클럽에 가는 것은, 일정한 높이에 오른 후에는 걷어차도 되는 사다리가 아니다. 살아가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인간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목발(보철 장치)같은 것이다.

스마트폰이 인간을 특정 방향으로 바꿔 놓는 지렛대가 된 것처럼, 북클럽은 그것에 맞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되찾는 발판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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