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조카가 여럿 있다. 나이도 1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하다.
그중 한 아이의 입사 소식을 들었다. 큰 언니의 아들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재입사다.
국내 대형 금융 회사의 기술 감정 전문가로 지원해 최종 면접 후보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외 유학파를 비롯해 학벌에 이력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대거 몰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에 성공했으니 분명 축하할 일이다.
합격 소식을 알려온 문자에 답글로 축하한다는 답문을 느낌표까지 달아 보내주었다.
하지만 내 맘 한구석엔 다른 감정도 있었다.
차마 그것마저 함께 전달할 순 없었다. 적어도 한껏 행복감에 젖어 있을 그 순간에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그 아이의 그간 궤적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고교 시절이었던가, 그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엄마의 자랑 섞인 말이었겠지만, 가끔 실제로 만나볼 때도 책을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독서 모임 동아리를 이끌고 있다는 말도 했다.
대학의 전공은 생명공학 쪽이었다.
사회 전체의 흐름을 감안할 때 그럴 만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내심 인문 계통의 공부를 했으면 바랐지만 입밖에 내진 않았다.
전공이야 어떻든 독서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석박사 과정에 진학한다는 말을 들었다.
언제 만나 이야기를 들었을 땐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인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학위 과정이 힘들었는지, 그 아이의 생각과 태도에서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다.
공부나 학교 연구실 생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곧이어, 기업에 취직한 선배들 이야기도 입에서 새 나왔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미 마음은 학교보다 그쪽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졸업 후 감정 회사로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한 때 안정적인 직장과 미래를 택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들어간 지 얼마 있지 않아 회사 내부의 이런저런 면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가끔 만나 나눌 수 있었던 책 이야기는 이제 그 아이의 입에서 들을 수 없었다.
아니, 책 이야기를 하긴 했다. 회사 업무와 관련한 책들을 읽기 바쁘다고 했다.
그 아이의 이야기는 갈수록 점점 건조해져 갔다.
그의 말과 말 사이에 비치는 일상의 모습은 치열한 경쟁 사회의 또 다른 한 명의 피곤한 주자의 그것에 가까워져 있었다.
대형 금융회사의 투자 부문 기술 평가사라면 회사로선 꽤나 쓸모 있는 도구일 것이다. 그러니 보수도 높을 것이다. 그래서 경쟁률도 그토록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도 훈장처럼 그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남들도 곧잘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이제 성공의 궤도에 올랐으니 행복의 길이 열린 것인가.
남들도 부러워할 만한 삶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데. 사실일까.
살다 보면 처음엔 출세와 성공의 빛나는 진입로인줄 알았는데,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의 퇴로로 통하는 고속도로의 입구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때는 유용하다는 갈채와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지만 결국엔 유통기한이 끝나 폐기되는 소모품의 퇴출구로 이어진 황금빛 컨베이어 벨트의 번쩍이는 입구에 내가 들어선 것임을 한참 후 낙하 지점에서야 깨닫는 것이다. 그런 삶을 나는 많이 보아 왔고 지금도 사방에서 본다.
조카에게 입사 축하 선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선물할 생각이다.
그중 한 아이의 입사 소식을 들었다. 큰 언니의 아들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재입사다.
국내 대형 금융 회사의 기술 감정 전문가로 지원해 최종 면접 후보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외 유학파를 비롯해 학벌에 이력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대거 몰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에 성공했으니 분명 축하할 일이다.
합격 소식을 알려온 문자에 답글로 축하한다는 답문을 느낌표까지 달아 보내주었다.
하지만 내 맘 한구석엔 다른 감정도 있었다.
차마 그것마저 함께 전달할 순 없었다. 적어도 한껏 행복감에 젖어 있을 그 순간에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그 아이의 그간 궤적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고교 시절이었던가, 그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엄마의 자랑 섞인 말이었겠지만, 가끔 실제로 만나볼 때도 책을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독서 모임 동아리를 이끌고 있다는 말도 했다.
대학의 전공은 생명공학 쪽이었다.
사회 전체의 흐름을 감안할 때 그럴 만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내심 인문 계통의 공부를 했으면 바랐지만 입밖에 내진 않았다.
전공이야 어떻든 독서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석박사 과정에 진학한다는 말을 들었다.
언제 만나 이야기를 들었을 땐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인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학위 과정이 힘들었는지, 그 아이의 생각과 태도에서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다.
공부나 학교 연구실 생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곧이어, 기업에 취직한 선배들 이야기도 입에서 새 나왔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미 마음은 학교보다 그쪽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졸업 후 감정 회사로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한 때 안정적인 직장과 미래를 택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들어간 지 얼마 있지 않아 회사 내부의 이런저런 면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가끔 만나 나눌 수 있었던 책 이야기는 이제 그 아이의 입에서 들을 수 없었다.
아니, 책 이야기를 하긴 했다. 회사 업무와 관련한 책들을 읽기 바쁘다고 했다.
그 아이의 이야기는 갈수록 점점 건조해져 갔다.
그의 말과 말 사이에 비치는 일상의 모습은 치열한 경쟁 사회의 또 다른 한 명의 피곤한 주자의 그것에 가까워져 있었다.
대형 금융회사의 투자 부문 기술 평가사라면 회사로선 꽤나 쓸모 있는 도구일 것이다. 그러니 보수도 높을 것이다. 그래서 경쟁률도 그토록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도 훈장처럼 그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남들도 곧잘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이제 성공의 궤도에 올랐으니 행복의 길이 열린 것인가.
남들도 부러워할 만한 삶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데. 사실일까.
살다 보면 처음엔 출세와 성공의 빛나는 진입로인줄 알았는데,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의 퇴로로 통하는 고속도로의 입구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때는 유용하다는 갈채와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지만 결국엔 유통기한이 끝나 폐기되는 소모품의 퇴출구로 이어진 황금빛 컨베이어 벨트의 번쩍이는 입구에 내가 들어선 것임을 한참 후 낙하 지점에서야 깨닫는 것이다. 그런 삶을 나는 많이 보아 왔고 지금도 사방에서 본다.
조카에게 입사 축하 선물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선물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