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모 식물 (ver. 0.5)

더듬이
2025-06-03 07:03
날아가는 빨간 고추잠자리를 하늘색 그물망으로 된 잠자리채로 휙하고 잡아채는 장면.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쓸 때 떠오르는 이미지다.

오늘 터벅터벅 걸어오는 길가에 늘어 서 있는 가로수가 문득 모국인 식물 세계에서 사람의 인공 세계로 볼모로 와서 잡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식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동물인 인간이 다른 생명종인 식물과는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닮았는지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동네 매봉산은 내게 도심 속 작은 아마존이다. (나는 아마존 정글에 가본 적이 있고 심지어 그 속에 지어진 오랜 호텔!에서 1박을 한 적도 있다. 아마존 정글이 어떤지 잘 안다.)  정상 높이가 95미터에 불과한 작은 산에 산책로를 내고 이런저런 편의 시설을 더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계획적으로 조성한 것과는 다른 말 그대로 야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나무들이 '무질서'하고 '엉망'인 걸 보면 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원이나 수목원의 인공으로 조성된 잘 정리 정돈된 나무들과는 다르다. '무질서'하고 '엉망'이라고 썼지만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자연은 사실 문명인의 눈으로 보면 무질서와 혼돈이다. 물론 그것이 빚어내는 다른 차원의 질서와 조화가 있지만 그 차원은 잠시 논외로 두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갖가지 식물끼리 햇빛을 받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 같다. 그래서 줄기와 가지가 뒤섞이고 뒤엉킨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한다. 나무는 저마다 숲이 되려 한다. 조건이 주어지면 그러려고 할 것이다. 왜 있지 않나. 한 마을 어귀나 중앙에 자리 잡은 오래 된 숲 같은 은행나무 한 그루. 그 안에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한.
나무도 식물도 태생은 야생이다. 우리 주변의 나무와 화초, 갖가지 식물들은 인공적인 환경 속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이 허용한 조건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다. 그래서 가끔은 실내 곳곳에 자리 잡은 화분들을 보면 안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화분보다는 공원이, 공원보다는 산속의 우거진 숲속의 나무들이 더 행복할 것이다.

이 모든 식물에 대한 생각의 뿌리에는
인간의 환경이 점점 인공성을 더해 가면서 자연과는 멀어지고 둔감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늘어만 가는 반려 동물이며 반려 식물을 보면서도 인간의 처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 처지란 어떤 것인가.
산책길에 마주치는 유아차를 보면 요즘은 사람보다 강아지가 타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더없이 아늑한 차안에 실려 가는 귀여운 (하지만 야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강아지는 아기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은 인류도 각종 인공 기술/기기 환경 속에서 그런 처지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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