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것은 8시 30분의 일이었다. 마치 감기에 걸리기 전날 밤 목처럼 마음 한켠이 까슬했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우울함이 밀려왔다. 원인은 자명했다. 이것들은 잘못된 선택, 특히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에서 온 것이다. '과거의 모든 사건은 가치중립적',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과 같은 주문들을 되뇌어보았지만, 감기 첫날 마시는 오렌지주스 같은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쇼츠로 1시간을 허비했다. 슬슬 허기가 돌면서 어제 보았던 침착맨의 '진라면 약간 매운맛 리뷰'가 떠올랐다. 냉장고에 남겨진 계란을 처리하려면 주말엔 부지런히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한다. 이마트에 가봐야 하나? 아니다. 너무 귀찮다. 편의점에 가서 있으면 사고, 없으면 열라면을 사야지. 그렇게 30분은 더 뒹굴거리다가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냄비에 물을 올렸다. 편의점을 다녀오면 딱 끓는점에 도달할 수 있게 아주 약불로 틀었다. 그리곤 고양이세수를 하고 바닥에 떨어진 회사 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다행히 유튜브에서 봤던 그 보라색 포장지 라면이 진라면 순한맛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이른 점심이라 오후에 배가 고플까 봐 로켓단 초코롤도 하나 집어왔다.
침착맨이 말했던 것처럼 첫맛은 밍밍하고 순했지만, 끝엔 진라면 특유의 후추 베이스 매운맛이 올라왔다. 어쨌든 진라면 매운맛보다는 맵지 않다고 느꼈는데, 막상 다 먹고 나니 진라면 매운맛을 먹었을 때만큼의 알싸함이 목끝에 남았다. 이럴 거면 그냥 먹는 동안도 즐겁게 아예 매운 맛을 먹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싸함을 달래기 위해 오후에 먹으려 했던 로켓단 초코롤을 바로 먹었다. 누가 준 건지 모르겠는 바샤 드립커피도 내려서 같이 먹었는데, 조합이 아주 좋았다. 띠부띠부씰엔 엘리게이가 들어있었다. 순간 심연의 표현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배를 채우고 나니 여러 가지 기억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왔다. 그중 하나는 금요일에 있었던 기타 레슨이었다. 1, 2번 현을 짚을 때 왼손에 아치가 없다는 것을 지적받았다. 검지로 1번 현에서 벤딩을 넣을 때 팔꿈치가 움직인다고 했다. 그것은 다시 아치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벤딩을 할 때 하행음이 남는 것은 다음 음정으로 너무 빨리 가려 해서라고 했다. 생각난 김에 기타를 잡고 지적받은 것들을 연습했다. 오랜 버릇이라 금방 고쳐지진 않았지만, 신경을 쓸수록 오히려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기타만 해도 이런데,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잘못된 버릇으로 가득 차 있을까. 미처 알지 못해서, 혹은 알면서도 반복하는 실수들이 얼마나 많을까. 미래엔 AI가 팅커벨처럼 따라다니면서 나에게 조언을 해주게 될까? 실리콘밸리의 임원들은 삶에 연속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드바이저와 늘 함께한다는 이야기도 언뜻 들은 것 같다.
그 후로 몇 시간 정도 시간을 허비한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을 했는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2시쯤 샤워를 하고, 어제 파마를 해서 맘처럼 정리되지 않는 머리를 말리고 경기교육청 과천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번 독서 모임 책도 결코 쉽지 않아 보여 미리미리 읽기 위해서였다. 사실 평소에 가는 과천정보과학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일 뿐, 책을 읽는 공간으로서는 좋은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교육청 도서관은 공간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어느 소개팅 자리에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예전에 방배에 숲도서관이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도서관도 못지않게 훌륭했다. 이렇게 좋은 도서관을 이사한 지 3년 반이 넘어서야 처음 와보다니. 사람들도 참 많았다. 정보과학도서관은 상대적으로 어르신들이 많은 느낌이었는데, 여기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있었다. 겨우 빈자리를 하나 찾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는 러시아의 단편소설들을 가지고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첫 번째 소설은 안톤 체호프의 「마차에서」였다. 저자는 소설을 짧게 짧게 끊어서 보여줄 테니,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에 집중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선택에 대한 후회와 '만약'으로 시작하는 망상으로 흘러갔다.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책이었다. 1897년에 쓰인 소설 자체도 안 읽혔지만, 이 소설을 가지고 강의를 해나가는 작가의 글은 더욱 더 읽히지 않았다. 시선은 책 위를 흐르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혹 소설을 짧게 짧게 끊은 방식이 문제일까 싶어, 끊김 없이 진행되는 두 번째 소설로 바로 향했지만 한 문단을 넘어가지 못했다. 도저히 이러한 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해 과감하게 덮어버렸다. 후회와 같은 쓸데없는 감정은 흘러보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주 자극적인 콘텐츠가 아니면 이것을 흘려보낼 수 없는 상태가 아닐지 걱정이 들었다.
혹시 몰라 가져온 음악소설집을 펼쳤다. 어제 미용실에서 읽다 만 「웨더링」을 이어서 읽어나갔다. 처음엔 약간 집중이 필요했지만, 아까와 다르게 결말까지 술술 읽혔다. 익숙한 이름, 상황, 감정은 나의 마음을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놔두질 않았다. 마차보다는 KTX 4인석이 나의 집중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래서 내가 한국의 '현대' '현대소설'을 좋아하는구나. 내친김에 마지막 작품 「초록 스웨터」까지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금세 완독해버렸다. 부록으로 담긴 작가들의 인터뷰를 읽기 시작할 즈음 배가 고파왔다. 돌아가는 길에 깐부치킨에서 간장치킨을 포장해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나가기엔 시간이 뜨는 것 같아 다시 덮어버렸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펼쳤다. 아까는 도저히 읽히지 않았던 문단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남은 파편들이 날아왔지만, 아까처럼 깊숙이 박히지는 않았다. 결국 무사히 첫 번째 작품과 해설을 다 읽어낼 수 있었다. 수영 강습을 가면 웜업이라고 해서 처음 4바퀴는 하고 싶은 영법으로 자유수영을 시킨다.
간장치킨은 맛있었지만, 얼마 먹지 못하고 금세 혈당 스파이크가 찾아왔다. 평소 같으면 침대에 누워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나 우울감 2배 이벤트를 경험했겠지만, 오늘 낮의 나는 웜업을 하지 않았던가. 다시 양말을 신고 노트북을 챙겨 조금 거리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이 글을 써내려갔다. 간장치킨으로 시작하는 이 문단을 쓰려던 참에, 시끄러운 손님들 때문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어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문득, 아까 과감하게 책을 덮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도저히 읽히지 않던 책을 덮었고, 다시 펼쳐 읽어낸 경험. 그것도 일종의 웜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젯밤부터 불현듯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모든 과거의 사건들, 그리고 그로 인한 괴로움을 이겨내는 이 일련의 과정도 웜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모든 선택은 내 맘대로 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끝 없이 경험할테니 말이다. 순한맛을 먹지 않는 이상 속은 맵다. 그럴 바엔 나는 그냥 매운맛을 먹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