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날개

더듬이
2025-06-12 07:47
조류는 생물 종 중에서도 특이하다. 그래서 늘 관심이 간다.
인류가 같은 동물임에도 포유류이다 보니 일찌감치 하늘을 주요 생활 공간으로 확보하고 삶을 이어온 새들이 기특하고 신통할 밖에. 육상 동물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땅을 차지할까 다투며 군비 경쟁을 벌이는 동안 고개를 들어 창공으로 눈을 돌려 살 길을 찾은 것 아닌가.
인간은 끝내 날것들을 만들어 결국엔 새보다 더 멀리 더 오래 더 높이 (우주로까지) 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이걸 보면 인간은 뭐가 됐든 기술의 힘으로 바라는 것을 이루는 재주를 타고 난 것 같다) 새의 일상적 날갯짓은 개별 인간에게 여전히 넘사벽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어떤 항공기의 비행 모습(곡예비행까지 포함해서)도 두루미가 나는 모스만큼 아름다운 장면은 본 적이 없다.

새에게 삶의 기본이자 필수는 잘 나는 능력이다. 새끼는 태어나면 나는 법을 배우고 익히고 나는 힘을 길러 때가 되면 비행에 나서고 장거리 이동도 한다.
이런 새의 나는 능력에 비길 만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뛰는 능력? 오래 걷는 능력? 헤엄치는 능력? 나는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보고, 생각하는 대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대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대로 사랑하고, 생각하는 대로 미워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생각하는 대로 죽는다. 사람을 만나도 처음엔 인상과 외관을 훑은 다음엔 무엇보다 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책을 읽는 것도 거기에 남다른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닌가. (생각은 대개 마음속 자아가 또 다른 자아와 대화하는 형식을 취한다. 변증법적 사고다. 다른 사람과 함께 생각하는 활동이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AI 또한 좋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의지할 때 문제가 된다. 그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AI는 사용자의 질문에 따라 정해진 프로그램(확률적으로 가장 적합할 것으로 계산된 단어의 구성)에 따라 답하게 돼 있다. 사용자에 따라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심지어 놀라울 정도로) 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자기 생각'이 있는 진짜 사람과의 대화에 비하면 결국 '그럴듯하게 말 상대해 주기'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과의 대화도 내게 맞춰주는 '건성'임을 깨달을 때에는 더 말을 이어가고 싶지 않게 된다. 대화도 위로 받기를 목적으로 할 때가 있지만 결국은 나와 다른, 나보다 더 넓고 높고 깊은 세계로 확장하고 도약하는 모험일 때 가장 즐겁다.)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살다 보면 실제로 제대로 사는 인간에게 생각이란 새의 날갯짓(=날개. ‘상상의 나래를 펴고’라는 노랫말은 절묘하게 맞는 표현이다)같다는 생각 든다.
생각을 잘 하려면 잘하는 법을 배우고 꾸준히 익혀야 하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면 꾸준히 활용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새가 날기 싫어하거나 귀찮아하거나 다른 맘을 먹고 게을리하거나 길들여지게 되면 타조나 닭 신세가 되는 것이다. 요즘 도심 곳곳에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비둘기들을 보면 머지않아 그 뒤를 이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상에 닭의 개체 수가 사람 수의 3.5배라고 한다. 이만하면 종의 생존과 번식으로 볼 때 대성공이라 해야 할까. 날기 위해 진화했던 날개는 치킨집의 인기 메뉴가 되고 말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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