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작은 사각형 화면 안에 온통 시선을 두고 사는 삶은 불행한가.
“중요한 것은 여타 의미의 가능성들에 스스로를 여는 것입니다. 매 시간, 매 순간 우리는 다른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여기에서 삶은 내게 의미를 제공해줍니다. 내가 삶을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형상화해 나갈 때도 그러하고, 혹은 수동적으로 아름다움을, 또 연구나 학문을 통해 진리를 수용할 때도 그렇습니다. 혹은 한 인간의 본질, 그의 인간성, 유일성, 고유성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내게 영향을 미치도록 할 때, 즉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의미의 가능성이지만, 이런 것들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 있는 일은 매 순간 달라질 수 있지요. 나의 삶이 제공해주는 것, 내 삶이 제안해 주는 의미는 매 순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열려 있어야 해요.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하지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내 삶이 언제 어디서 숨겨진 의미의 가능성을 내게 건네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려면 넓은 지평을 가져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이후> 중에서
“중요한 것은 여타 의미의 가능성들에 스스로를 여는 것입니다. 매 시간, 매 순간 우리는 다른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여기에서 삶은 내게 의미를 제공해줍니다. 내가 삶을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형상화해 나갈 때도 그러하고, 혹은 수동적으로 아름다움을, 또 연구나 학문을 통해 진리를 수용할 때도 그렇습니다. 혹은 한 인간의 본질, 그의 인간성, 유일성, 고유성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내게 영향을 미치도록 할 때, 즉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의미의 가능성이지만, 이런 것들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 있는 일은 매 순간 달라질 수 있지요. 나의 삶이 제공해주는 것, 내 삶이 제안해 주는 의미는 매 순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열려 있어야 해요.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하지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내 삶이 언제 어디서 숨겨진 의미의 가능성을 내게 건네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려면 넓은 지평을 가져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이후> 중에서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가장 먼저 생각을 나눠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