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naming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이름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무엇이든 이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죽었다라고 하는 대신 돌아갔다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을 보는 시선은 어떤 것이었을까. (순환의 세계관에서 죽음은 회귀, 귀환이 되거나 잠시 이별 혹은 이동이 된다.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는 슬퍼할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 된다. 영전을 축하하지 슬퍼할까.)
죽음을 지금의 지배적인 인식처럼 생체 기능의 불가역적 정지로 볼 게 아니라 완결 혹은 (미)완성이라 부르면 어떨까.
똑같은 종결의 상황을 두고도 공연이나 연주나 영화가 끝났을 때는 죽음이라 부르지 않고 대단원이나 피날레라고 부르기도 하듯.
그렇게 죽음을 바라볼 때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연속적인 나름의 맥락적 의미를 띠고 제 몫의 빛을 얻게 된다. 죽음을 통해 삶의 전 과정은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된다는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삶은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부르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우리는 이름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무엇이든 이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죽었다라고 하는 대신 돌아갔다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을 보는 시선은 어떤 것이었을까. (순환의 세계관에서 죽음은 회귀, 귀환이 되거나 잠시 이별 혹은 이동이 된다.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는 슬퍼할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 된다. 영전을 축하하지 슬퍼할까.)
죽음을 지금의 지배적인 인식처럼 생체 기능의 불가역적 정지로 볼 게 아니라 완결 혹은 (미)완성이라 부르면 어떨까.
똑같은 종결의 상황을 두고도 공연이나 연주나 영화가 끝났을 때는 죽음이라 부르지 않고 대단원이나 피날레라고 부르기도 하듯.
그렇게 죽음을 바라볼 때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연속적인 나름의 맥락적 의미를 띠고 제 몫의 빛을 얻게 된다. 죽음을 통해 삶의 전 과정은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된다는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삶은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부르느냐에 크게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