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그 무엇.

2407 시즌 - 책 <인간의 조건>
sunny
2024-09-19 00:04
전체공개

어떤 무엇에 조건(?)이 붙기 시작하는 순간,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는, 일부 작위적인 상황과 대면하게 된다. 이 책의 시작과, 끝이 ‘조건’이란 단어에 얽매여 파해치고자 했던 참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었다면, 단순히 생각하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건,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 어떤 이유보다 앞서는 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노동은 일상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작업은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통해 세상에 변화를 동반할 수 있다고 가정하며, 행위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아렌트의 조건들이 잘 작동하는 것이 될까? 무엇을 자꾸만 해내고, 조건들을 자꾸 재생산해내는 인간들의 행동들이 인간이 인간일 수 없게 하는 조건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앞선 그 부자연스러움에 일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도 계속 머무르게 되고 말이다. 

살아있기에 노동을 하며, 생각을 하기에 활동을 해내며,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음에 대해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인간은 행위를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를 드러내며, 공동체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어떤 행위일까에 대한 물음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소비 중심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스스로의 창조적 삶을 찾는 것, 단순한 노동을 넘어서 삶을 더 깊이 성찰하는 방식으로, 자유와 자아 실현을 추구하는 길... 이젠 개념적인 미사여구처럼 쓰일 수 있을 정도의 식상한 해결책이지만, 우리가 인간이기에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더 고민해봐야 할 도전을 우린 매일 매일 목도하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인간의 조건에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것까지. 인간은 조건 지어진 존재라는 전제 앞에 그 어떤 것도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건 마치 죽음을 염두해 두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이란 무의미하다는 어떤 논리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되었다. 

아쉬운 점은, 책은 장황했고, 어려운 개념들을 모두 망라해두었지만, 노련한 학자의 숙고한 이론들을 뛰어넘을 만큼 깊은 사색을 하기엔 나의 고민은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너무도 근본적인 독서의 근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 책이었다. 

생각해볼 문장들 

192 p. 
‘소비자 또는 노동자의 사회에서 삶이 쉬우면 쉬울수록, 이 사회적 삶을 떠미는 필연성의 충동을 계속해서 의식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더구나 필연성의 외적 현상인 고통과 수고가 전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이러한 사회의 위험은, 이 사회가 증가하는 다산성의 풍요에 현혹되고 끝없는 과정의 원만한 기능에 사로잡혀 더 이상 자신의 무상함, 즉 ’노동을 한 후에도 지속되는 어떤 영속적 주체에서도 삶은 자신을 고정시켜 주체화할 수 없다‘는 무상함을 인식할 수 없다는데 있다. 

233p. 
이 세계의 안정성이 항상 변화하는 인간의 삶과 행위의 운동을 견뎌내고 보다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이 세계가 소비를 위해 생상된 대상의 기능주의를 초월하고, 이용을 위해 생산된 대상의 유용성을 초월할 때이다. 
- 중략 - 
확실한 것은 생물학적 삶과 노동의 강제적 필연성은 그 척도가 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제작과 사용의 실용적 도구주의도 그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242p 
인간사의 그물망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들 
행위와 말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는 생생한 인간의 본질을 단어로서 체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선은 행위하고 말하는 자로서 존재하는 우리들 인간사의 전영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인격이 표현되는 방식이 고대 신탁의 매우 믿기 어려운 계시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말과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면 사람을 지향한다. 그리고 말과 행위는 그 내용이 오로지 ‘대상적’이고 사물세계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질떄조차도 주체를 계시하는 능력을 가진다. 

276p. 
타인으로부터 고립이 필수적 선행조건인 작업활동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현상할 수 있는 자발적인 공론 영역을 확립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현상 공간과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관련을 맺고 있다. 

283p. 
오늘날에 노동자는 사회의 외부에 있지 않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이며 모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직업인이다. 노동운동의 정체적 의미는 이제 다른 이익집단과 동일하다. 
노동운동은 대표성을 사실했고 따라서 가장 발전한 서구 경제처럼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권력을 갖게 되어 사회의 핵심부분이 된 곳 어디에서나, 또는 러시아와 심지어 전체주의가 아닌 곳에서조차 발생했던, 즉 모든 인구를 노동자 사회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던 곳에서도 노동운동은 즉각 그 정치적 역할을 상실하였다.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