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삶

2407 시즌 - 책 <마틴 에덴 1, 2>
늘보리
2024-10-23 20:19
전체공개

아는 것은 많은데 삶은 비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이 배우지 못했는데도 현명한 사람이 있다. 작은 지식이라도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데, 많이 배우고도 하나도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허풍으로만 들린다. 가끔 책을 읽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불현듯 내가 뱉은 말들이 건강한 증언 내지 고백인지,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자기 고민 없이 그저 좋다고 평가되는 말들을 받아서 취하고 내 것인양 말하는 것을 경계하려 하지만 앎과 삶의 괴리가 커질수록 책의 말들이 내 안으로 흡수되지 않고 기름처럼 둥둥 뜨는 것 같다. 흡수되지 못한 말들은 하지 않는 게 나을 때가 많고.

잭 런던의 <마틴 에덴>을 읽으면서 인간은 왜 배우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마틴은 처음에는 상류층 여성에게 끌려서, 읽고 쓰면서 알게 되는 아름다움 자체에 끌려서 스스로 궁핍한 생활을 택한다. 아무도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단 한 사람(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에게 인정받고 그의 조력으로 화려하게 등단했으며, 과거에 자신이 우러러보던 상류층 사람들의 우러름을 사면서 그들을 지탱해주는 거창하지만 사실은 허울뿐인 지식의 천박함을 깨닫는다. 작가로 성공을 거둔 뒤 다시 찾아온 루스에게 마틴은 작품이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도 자신은 지금과 똑같았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한다. 군중의 인정 vs. 단 한 사람의 인정. 마틴은 그토록 상류층의 허위지식을 혐오했지만, 그들 무리의 인정을 받은 뒤에야 사랑했던 연인의 인정도 구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던 ‘단 한 사람’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틴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밖에 없었을까. 다른 선택은?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요즘 세상에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라니…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수동적이고 속물적이며 세상물정 모르는 루스 캐릭터를 보는 것도 괴로웠다. 그토록 비판적 사고에 능했던 마틴은 어째서 자신이 진심으로 루스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상화한 루스를 사랑한 것임을, 그 혹독한 시련을 겪은 뒤에야 깨닫게 된 걸까. 사랑의 열병 때문이라기에 루스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결말에 가서야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대목 덕분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알아내고 알아낸 세계를 작품으로 펼치고도 마틴은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극강의 무력감에 빠진 그였지만, 폐에 물이 차자 자신도 모르게 살려고 발버둥친다. 발버둥치려는 자신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은 통제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숨이 다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마지막 문구. 알려는 의지가 우리 삶을 옥죄지 않고 더욱 생기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려는 의지는 살려는 의지와 같은 걸까. 읽고 싶은 책은 점점 쌓이는데 읽는 속도는 좀처럼 따라잡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자신에게 묻게 된다. 뭘 그렇게 알고 싶은 건데? 왜 그렇게 알려고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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