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이 보지 못했던 것.

2407 시즌 - 책 <마틴 에덴 1, 2>
이초록
2024-10-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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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이 보지 못했던 것.

1) 루스
소설을 읽는 내내 루스를 이해하고 그녀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틴이 루스에게 덧씌운 ‘부르주아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면, 루스는 매우 평면적이고 고리타분한 캐릭터였다. 마틴에게 사랑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고귀하고 완전한 것이었지만, 루스에게 사랑은 정열적으로 시작되더라도 결국 그녀가 배워온 형태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었다. 마틴은 루스가 현재의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봐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루스는 그가 추구하는 사랑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다. 책을 읽어갈수록 의문이 들었던 것은, 과연 마틴은 루스를 진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마틴은 자신이 실제의 루스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데, 나 역시 마틴이 처음부터 루스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고 그것을 열렬히 쫓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아름다움
전율을 일으키는 예술 작품이나 성스러운 연인의 등장만이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면,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제한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살면서 몇몇 순간은 경이롭고 찬란하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조용하고, 때로는 고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삶을 지속하는 이유는, 배를 곯을 때 죽을 건네주는 이웃집 여인이 있고, 고된 노동 뒤에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며, 재킷 주머니에 위스키 한 병을 담아오는 친구의 재치가 있기 때문이다. 마틴이 이러한 작은 애정과 친절을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보지 못했다는 점은 조금 안타깝다.

3) 정체성
마틴은 한때 끊임없이 반송되던 원고들이 뒤늦게 인정받는 것을 보고 깊은 혼란에 빠진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대중이 갑작스럽게 그의 작품을 찬양하자, 마틴은 그 평가가 대중의 변덕이나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좌우되었을 뿐, 그의 작품이 진정으로 읽히고 있지 않다고 의심하게 된다. 또한, 그들이 우상화하고 있는 작가 에덴 마틴은 자신과는 별개의 인물이라고 느낀다. 더는 노동자 계급이 아니면서, 동시에 부르주아가 될 수 없는 자유로운 선원 마틴 에덴의 모습이 계속 충돌한다. 나는 이러한 두 계급 사이에서의 모호함이야말로 마틴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부르주아에게 실제 노동자의 삶을 그려낼 힘을 자신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무엇이 마틴을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

1권을 읽으면서 ‘이토록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란 질문을 계속 되뇌었던 것 같다. 이보다 더 삶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영웅담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바닥부터 성장하는 마틴의 이야기를 읽으며 삶이 얼마나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반전은.. 2권을 모두 읽고 나서는 허무한 기분이 들어 책을 내팽개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토록 마틴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정신을 지녔던 마틴은 어디로 사라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시간이나 마음이 아닌 돈으로 호의를 베푸는 부르주아가 되어 버린 것인지...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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