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에 쓰여진 '자전적 소설' 읽기

2407 시즌 - 책 <마틴 에덴 1, 2>
자장가
2024-10-26 07:57
전체공개

마틴 에덴(Martin Eden)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개된다. 

《마틴 에덴》(영어: Martin Eden)은 잭 런던의 1909년 소설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프롤레타리안의 일대기를 다룬다. 1908년 9월부터 1909년 9월까지 〈더 퍼시픽 몬슬리〉에 처음 연재되었고 1909년 9월 맥밀런이 책 형식으로 출판했다. 주인공의 이름인 마틴 에덴은 스웨덴의 노동 계급 남성 모르텐 에딘(Mårten Edin)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마틴 에덴은 모르텐 에딘보다 작가 자신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 (위키피디아 한글판, '마틴 에덴' 항목)

소설(넓게는 '예술' 전반)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삶과 정신을 반영한다. 지어낸 이야기(Fiction)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기에 소설의 배경은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 장소와 같을 수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행동 역시 작가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을 수도 있고, 상상 속에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자전적 소설'이라면 소설의 배경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작가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위키피디아의 '잭 런던' 항목에서 정리된 작가의 삶은 소설 속 주인공인 '마틴 에덴'의 삶의 궤적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거의 비슷하다).
마틴 에덴에 대한 독후감에서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과 작가에 대한 생각을 구분하기 어렵고, 어쩌면 구분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성장하고 번영하는 시기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면서도, 시대의 모순과 문제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빅토리아 시대, 벨 에포크 등으로 불리는 19세기 말~20세기 초는 과학 기술과 다양한 사상이 생겨나면서 풍요로운 시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술을 활용한 산업화와 제국주의(침략과 식민지화)로 탐욕과 착취가 만연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들이 표면화되고 심화되면서 이를 정당화하는 사상과 이에 반발하는 사상이 학문과 예술에서 나타나는 시대였다. 결국, 이 시대는 사회주의 혁명과 세계대전이라는 종국에 도달하게 된다.

문학사에서는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 등의 여성작가들이 여성의 글쓰기를 불온하게 여긴 가부장주의적인 사회의 성적인 편견과 억압에도 소설가로서 활동한 시기이기도 하다. (위키피디아 한글판, '빅토리아 시대' 항목)

가난한 하층민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를 받지 못한 마틴 에덴은 아름다운 여인 루스의 사랑을 얻고, 천박하고 미래가 없는 현재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한다. 마틴이 가진 날것의 생명력에 매력을 느끼면서, '교양' 교육을 통해 사람을 계몽하고 건전한 삶을 살도록 만들겠다는 생각하에 루스는 마틴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그리고 (혹은 그러나) 마틴은 그 시대와 사회가 가진 한계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루스가 속한 세상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두 사람은 멀어지게 된다. 이후에 마틴은 작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자신을 찬양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자살한다.

'소설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삶과 정신을 반영한다'라는 첫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간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다면 그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것이 사회사상가로도 언급되는 사람들의 잭 런던(혹은 조지 오웰이 될 수도 있다)의 책이라면? 

소설 속에서 마틴이 '작가'이기를 고집하고, 고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마틴은 단순히 소설에서 서사를 감당하는 주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잭 런던의 삶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틴이 언급하고 주장하던 스펜서의 사상은 이미 적합성을 잃었고, 니체의 철학은 실용주의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소설에서 찾을 수 있고 현재에도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의 구조와 이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19세기 말 산업혁명이 세상에 끝없는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인류의 물질적 번영이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끔찍했던 세계 대전이 종결되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탐욕을 제대로 제어하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재앙에 대한 기억도 흐려지고 있다. 풍요속에서 계층간, 국가간, 지역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기주의와 집단주의가 삶의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현실에서 120년 전 세상이 주었던 교훈을 생각하게 된다. 

호텔의 널찍한 베란다에서는 시원해 보이는 흰색 옷차림의 남녀들이 찬 음료수를 홀짝거리면서 몸을 식혔다. (...) 그는 끊임없이 머리와 손을 움직이는, 지능을 가진 기계가 되었고, 그라는 사람을 이루는 전부가 그 지능을 제공하는 데 바쳐졌다. 그의 머리속에는 우주라든가 그런 대단한 문제들이 있을 여지가 없었다. (...) 바깥에서는 세상이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 까무러치고 있었다. 그러나 과열된 세탁소에서는 까무러치는 일도 있을 수 없었다. 시원한 베란다의 손님들은 깨끗한 리넨 옷가지가 필요했다. (...) 그는 짐승, 일하는 짐승이었다. 

사족을 붙이자면, 학교 다닐 때 '잭 런던'은 '금서' 중의 하나였던 '강철 군화'의 저자 정도로 기억된다. 아마 비슷하게 '업튼 싱클레어', '프랑츠 파농'과 같은 작가들의 책을 헌책방에서 재수좋게 찾았던 같다. 

의미도 없고 뚜렷한 목표도 없음에도,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회귀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영광스런 결말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인 그 자체로서의 실존. 의미없음의 영원한 반복. 이것이야말로 인생이라는 무의미한 가치의 가장 극단적인 형식이 아니냔 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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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작가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참고사항이며, 독후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John Griffith Chaney (January 12, 1876 – November 22, 1916), better known as Jack London, was an American novelist, journalist and activist. A pioneer of commercial fiction and American magazines, he was one of the first American authors to become an international celebrity and earn a large fortune from writing. (Wikipedia, 'Jack London' 항목)

잭 런던(Jack London, 1876년 1월 12일 ~ 1916년 11월 22일)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이다. 
생부는 떠돌이 점성술사인 윌리엄 체이니로 어머니 플로라 웰맨과 1년간 동거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체이니는 생부임을 부정했으며 어머니는 이후 홀아비로 지내던 존 런던과 재혼해 런던이라는 성을 얻게 되었다. 존 런던은 목수, 장사, 농사 등 여러 일을 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사이는 좋았으나 부부싸움이 벌어지면 그는 근처에 살던 유모에게 도피하곤 했다. 그의 또다른 도피처는 도서관이었는데 사서였던 이나 쿨브리스가 그에게 지속적인 독서지도를 해주었다. 10대시절 그는 볼링장, 아이스크림가게, 통조림 공장을 전전하며 일을 해왔다. 통조림 공장에서 하루에 18~20시간까지 일한 날도 많았다. 그의 단편 배교자(The Apostate, 1906)에 이 시기가 묘사되어 있다.
(...)
샌프란시스코 해안의 굴양식장에서 굴을 훔쳐파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안 런던은 15세가 되던 1891년 돈을 모아 배 한척을 사서 '가장 어린' 굴해적이 된다. 그는 꽤 유능한 해적이어서 다른 해적들에 결코 밀리지 않았으며 경찰에게 포섭된 뒤로는 끄나풀 역할도 하게 되었다. 단편 해안경비 이야기(Tales of the Fish Patrol, 1905)에 묘사되어있다. 그는 1893년에 선원이 되어 물개잡이배에 올랐다. 이 범선은 일본을 거쳐 시베리아까지 가는 것이었으며 잔머리와 대담함으로 다른 선원들의 무시를 극복하며 잘 적응했으나 번 돈을 가족에게 모두 주었다. 이 경험은 일본 앞바다의 태풍(Story of a Typhoon Off the Coast of Japan, 1893)이라는 단편으로 남겼고 이것이 그가 돈을 받은 첫번째 원고였다.
(...)
이후 많은 작품을 응모하곤 했지만 모두 떨어졌고 그는 다시 '일하는 짐승'이 되었다. 1894년엔 전차회사의 발전소에서 일을 했고 작은 정치집단에서 행패를 부리기도 하다가 부랑아가 되었다. 그는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일도 하고 무임승차도 했다.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났으며 그들이 왜 사회에서 버림받게 되었는지를 체험했다. 자신을 강자라고 생각했던 이 젊은이는 자신이 얼마나 약자였는지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이 시기는 자전적 소설 길(The Road, 1907)에 묘사되어있다.

1897년 알라스카에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런던은 매부와 함께 클론다이크로 떠났다. 매부는 먼저 돌아왔고 홀로 남은 런던은 죽을 고생을 했지만 노다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윈과 스펜서를 읽었으며 자연을 만났다. 자신의 남성성을 유감없이 펼쳤던 이 시기를 그는 이후 자랑스러워했으며 그의 자연주의 소설 다수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어쨌거나 그는 1898년 빈손으로 오클랜드까지 돌아오게 되었다.
(...)
그는 돌아와서 닥치는대로 일하며 체신청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 합격했어도 경제위기로 직업은 주어지지 않았으며 계속 여기저기 원고를 보냈다. 그래서 들길을 가는 사내에게 건배(To the Man on Trail, 1898)와 하얀 침묵(The White Silence, 1899)을 잡지에 실을 수 있었으며 이 즈음 체신청에서 직업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으나 이미 대작가가 된 기분으로 그 직장을 포기했다. 런던은 적자생존과 진화론 등 자연과학적 성과를 문학속에 담으려는 유럽의 자연주의를 미국에 도입하고자 했다.
(...)
작가로도 사회주의 운동가로도 성공적이었던 런던은 1907년 챠미언과 세계일주를 계획한다. 대중의 관심을 피해 은둔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집필은 계속해서 자전적 소설인 마틴 에덴(Martin Eden, 1909)을 내놓았다. 여기서 그는 어린시절 자신이 느꼈던 실패와 좌절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했다. 7년 계획한 세계일주는 2년만에 중단되었다.
(...)
1913년 런던은 노동자들을 모아 협동농장을 만들기 위해 7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나 건설과정에서 방화로 전소되었다. 게다가 챠미언과의 관계도 나빠졌고 전처와 낳은 자식들과의 관계도 소원했다. 그는 술에 빠져들었고 1916년에는 사회당도 탈당했다. 과음과 건강악화에 피로가 겹쳐 그는 사망했다. 자살로 명시하긴 어렵지만 자살로 보는 견해가 많다. (위키피디아, 한글판)

허버트 스펜서(영어: Herbert Spencer, 1820년 4월 27일,더비셔주 더비 ~ 1903년 12월 8일)는 영국 출신의 사회학자,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다. (...) 빅토리아 시대에 활약한 그는 주 활동 분야인 사회학과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인류학, 심지어는 당시 형태를 갖춰 나가던 진화론을 비롯한 생물학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주로 20세기 초반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사회 진화론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자연 과학에 흥미를 가졌던 그는 진화 철학을 주장하고, 진화가 우주의 원리라고 생각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도 강한 사람만이 살 수 있다는 '적자 생존설'을 믿었으며, '사회 유기체설'을 주장하였다. (...) 스펜서의 진화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단순성(homogeneity)에서 복잡성 (heterogeneity)으로 가는 법칙이 전 우주의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창조뿐만 아니라 동물의 진화, 인류의 진화, 그리고 사회의 진화까지도 모두 이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환경이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변화하면서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간, 그리고 사회도 이에 적응을 통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단순성, 복잡성은 하등, 고등 혹은 열등, 우등의 개념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는 진화가 자연의 선택 결과일 뿐, 하등, 고등의 정도와는 무관하다고 본 다윈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독일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하였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 이렇듯, '영원한 세계'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니체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에 반대한다. 니체는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달리,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멸망적 교리만을 전했다며 기독교를 비판했다.
니체는 전체주의, 국수주의, 국가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파시스트들에게 왜곡되기도 했다. (...) 니체는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단지 진리를 추구하는 힘만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상 세계는 허구이며 오직 현상 세계만이 존재하고, 결과가 없이 언제나 과정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이성의 철학이 아닌 반이성의 철학, 실체의 철학이 아닌 관계의 철학, 정적인 철학이 아닌 동적인 철학, 계몽의 철학이 아닌 허무의 철학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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