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선생

2411 시즌 - 책 <1945년 해방 직후사>

경비병
2024-12-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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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몽양 여운형 선생이었다. 현명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책을 뚫고 나와 나를 압도했다.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운형 선생의 어떤 면이 나를 끌리게 했는가? 


첫째,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여운형 선생의 합리적인 면은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대표적으로는 감옥에서의 태도다. 

김창숙은 여운형과 안창호가 일제 감옥에서 규율을 잘 지켜서 상표를 받았다며 그들을 비판했다. 김창숙은 옥중투쟁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될지언정 지조와 절재를 지키겠다는 절개형 지사형의 인물이었던 반면, 여운형과 안창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에서 빨리 나가 사회에서 운동을 하겠다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일제에 굴복하는게 아닌 한 규율을 지키는 일 정도는 합리적인 처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운형 선생과 안창호 선생에게는 더 큰 대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을 택한 이유 중 하나도 “공산당원들처럼 맹목적이거나 원칙론을 앞세우기보다는 교섭이 가능한 합리적 인물이라고 판단했다”이다. 어느 때나 맹목적인 원칙론을 앞세우는건 쉽다. 그러나 매번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어렵다. 모든 순간에 깊은 생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대신 유연한 사람이 된다. 마치 쿵푸처럼 말이다. 여운형 선생은 조선총독부의 간절한 치안유지 요구를 받아서 흘린 뒤 힘을 증폭시켜 ‘건준’이라는 형태로 맞받아쳤다. 오매불망 소련군을 기다리던 송진우는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나는 이런 여운형 선생의 유연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둘째, 강단있다


위에서 말한 ‘유연한 사람’이랑 대치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 없는 바보도 ‘유연할’ 수 있다. 마치 뼈 없는 몸처럼 말이다. 어떤 압력에나 휘어지고 구부려진다. 그런데 ‘강단’있고 ‘유연’한 사람은 뼈가 있는 몸인데 상황에 따라 자세를 바꿔 마치 유연하게 보이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여운형 선생이 테러를 당해 자리를 비웠을 때 건준 2인자 안재홍은 한민당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운형은 달랐다. 이만규가 말하듯 “자기주의를 관철하는데는 혁명적이고 큰 강령에 있어서는 결단적이고 외부 간섭에 있어서는 투쟁적”인 사람이었다. 결코 모든 방면에서 유연하지 않았다.

이런 ‘강단’과 ‘유연함’을 함께 갖췄을때 현명한 사람이 된다.


셋째, 협업의 천재다


건준이 설립되고 처음 한 일이 ‘집회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치범과 독립투사들의 석방’이었다. 이 일을 구상한 것 자체와, 첫번째 할 일로 배치한 것은 정말.. 소름 돋도록 현명했다. 석방된 2만여 명의 정치범과 독립투사들은 해방의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각자의 고향에 돌아가 보름 만에 145개의 건준 지부를 만들었다. 전국에서 집회가 열렸으며, 언론은 해방 소식을 전했다. 

개발자로서 비유를 하자면 여운형 선생이 ‘오픈소스 개발자’로 느껴졌다. 오픈소스 개발자는 프로그래밍 코드를 공개해서 전세계 개발자들과 협업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는 그 성장 속도가 소수의 엘리트가 만드는 ‘폐쇄소스’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여운형은 건준 첫날 ‘건국 준비’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전국 시민 3000만 명을 끌어 들였으며, 덕분에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넷째,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


이전에 함께 읽었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나온 민주주의가 살아남는 데 근간이 되는 마음의 습관, 즉 “창조적으로 긴장을 끌어안기”가 생각났다. 

정치적으로 반대에 있는 사람을 안 보기는 쉽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대의를 위해 끌어안는 것이다. 여운형은 건준 설립할 때부터 정치적 반대편에 있는 송진우에게 합작을 제안했다. 그러나 송진우는 거절했다. 미군정이 들어선 이후 여운형은 미군정에게 모역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우호적이고 협력적이려 애썼다. 하지가 첫인사로 “일본놈에게 얼마나 돈을 받아먹었지?”라고 면박을 주어도, 여운형은 미군정의 고문이 되어 주었다. 미군정이 여운형에게 고문회에 들어오라고 요청한 것은 ‘긴장을 끌어안기’가 아니었다. 구색 맞추는 용도일 뿐이었다. 

여운형은 자신과 자신의 단체에게 가해지는 모욕에 대한 기분보다도 대의가 우선이었다. 여기서도 여운형 선생님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면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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