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읽히는 세상을 위해
2411 시즌 - 책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2025-01-15 00:21
전체공개
“타인을 읽고 타인에게 읽을거리를 주는 2025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읽고 읽히는 세상을 위해”
지난달 크리스마스 카드에 쓴 문장이다.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를 읽고 느꼈던 것을 함축해서 적은 것인데 다시 풀어써보려 한다.
여느 때처럼 동네 돈까스 집을 갔다. 얼마 전 읽었던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가 생각나서 폰을 내려놓고 돌봄의 눈으로 주위를 ‘읽으’려 노력했다. 읽을거리가 너무 많았다. 사람들이 지루해서 폰을 본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매장 안 사람들과 분위기를 읽고 있는 중에 돈까스 집에 전화가 왔다. 배달시킨 돈까스가 늦는다는 항의 전화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다정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내용을 파악해보니 5분 거리의 배달인데 돈까스를 가져간 배달 기사가 아직도 도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달 중간에 샌 것처럼 보였다. 고객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주인 아주머니는 배달 기사에게 전화했다. 짜증 낼 만도 하지만 따지지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고객에게는 돈까스가 식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결국 돈까스를 받은 고객에게 다시 연락이 왔고, 새로운 돈까스를 다시 보내셨다. 아주머니는 친절함으로 고객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늦은 기사에게 어떠한 짜증도 내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조급해 하지도 짜증 내지도 않고 친절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읽고 배웠다.
배달 소동이 끝나고, 한 커플이 가게에 들어왔다. 앉아서 주문을 끝내더니 핸드폰을 꺼내 각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창 사람들을 읽고 있던 내게 이 사람들은 마치 닫혀있는 책처럼 느껴졌다. 내게 읽을거리를 주지 않았다. 이런 분들이 세상을 얼마간 건조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만약 매장 안 모든 사람이 그랬다면 나 또한 사람들을 읽는데 싫증을 느끼고 핸드폰을 꺼내들었을지 모른다. 핸드폰이 없는 시절에는 읽을거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았을까? 온라인에서의 읽을거리는 넘쳐나고 있는데, 정작 오프라인에서의 읽을거리는 빈곤해지고 있다.
이날 경험을 통해서 돌봄의 눈으로 타인을 읽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타인이 읽을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읽고 쓰는 것은 순환의 관계라고 했다. 읽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타인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읽는 능력은 책, 자연, 사람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읽을 것들을 소화해 글이라는 형태로 쓸 수도 있지만, 행동으로서 표정으로서 몸짓으로서 말로서도 세상에 ‘쓸’수 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걸어다니는 책이 된다. 좋은 책이 그렇듯이 좋은 사람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생각의 불을 지핀다.
잘 읽고 잘 읽히는 사람으로는 <화씨 451> 소설의 클라리세가 떠오른다. 그 소녀는 사람과 자연의 읽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자신도 방화수(책을 태우는 직업)인 몬태그에게 읽을거리가 되어준다. 주인공 몬태그는 클라리세와의 그 짧은 만남으로 마음에 불씨가 심어지고 타올라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마치 인생의 책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나는 클라리세 처럼 사람과 자연을 읽고, 읽을거리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먹고 먹히는’ 경쟁 사회가 아닌, ‘읽고 읽히는’ 돌봄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난달 크리스마스 카드에 쓴 문장이다.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를 읽고 느꼈던 것을 함축해서 적은 것인데 다시 풀어써보려 한다.
여느 때처럼 동네 돈까스 집을 갔다. 얼마 전 읽었던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가 생각나서 폰을 내려놓고 돌봄의 눈으로 주위를 ‘읽으’려 노력했다. 읽을거리가 너무 많았다. 사람들이 지루해서 폰을 본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매장 안 사람들과 분위기를 읽고 있는 중에 돈까스 집에 전화가 왔다. 배달시킨 돈까스가 늦는다는 항의 전화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다정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내용을 파악해보니 5분 거리의 배달인데 돈까스를 가져간 배달 기사가 아직도 도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달 중간에 샌 것처럼 보였다. 고객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주인 아주머니는 배달 기사에게 전화했다. 짜증 낼 만도 하지만 따지지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고객에게는 돈까스가 식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결국 돈까스를 받은 고객에게 다시 연락이 왔고, 새로운 돈까스를 다시 보내셨다. 아주머니는 친절함으로 고객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늦은 기사에게 어떠한 짜증도 내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조급해 하지도 짜증 내지도 않고 친절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읽고 배웠다.
배달 소동이 끝나고, 한 커플이 가게에 들어왔다. 앉아서 주문을 끝내더니 핸드폰을 꺼내 각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창 사람들을 읽고 있던 내게 이 사람들은 마치 닫혀있는 책처럼 느껴졌다. 내게 읽을거리를 주지 않았다. 이런 분들이 세상을 얼마간 건조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만약 매장 안 모든 사람이 그랬다면 나 또한 사람들을 읽는데 싫증을 느끼고 핸드폰을 꺼내들었을지 모른다. 핸드폰이 없는 시절에는 읽을거리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았을까? 온라인에서의 읽을거리는 넘쳐나고 있는데, 정작 오프라인에서의 읽을거리는 빈곤해지고 있다.
이날 경험을 통해서 돌봄의 눈으로 타인을 읽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타인이 읽을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읽고 쓰는 것은 순환의 관계라고 했다. 읽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타인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읽는 능력은 책, 자연, 사람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읽을 것들을 소화해 글이라는 형태로 쓸 수도 있지만, 행동으로서 표정으로서 몸짓으로서 말로서도 세상에 ‘쓸’수 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걸어다니는 책이 된다. 좋은 책이 그렇듯이 좋은 사람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생각의 불을 지핀다.
잘 읽고 잘 읽히는 사람으로는 <화씨 451> 소설의 클라리세가 떠오른다. 그 소녀는 사람과 자연의 읽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자신도 방화수(책을 태우는 직업)인 몬태그에게 읽을거리가 되어준다. 주인공 몬태그는 클라리세와의 그 짧은 만남으로 마음에 불씨가 심어지고 타올라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마치 인생의 책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나는 클라리세 처럼 사람과 자연을 읽고, 읽을거리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먹고 먹히는’ 경쟁 사회가 아닌, ‘읽고 읽히는’ 돌봄 사회를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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