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의 사회에서 우정에 이르는 법
2411 시즌 - 책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2025-01-15 21:36
전체공개
마우스, 키보드, 스마트폰의 액정 등 손가락 끝에 닿는 물체가 플라스틱 계열이 대부분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촉각이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반면 눈에서 30cm~1m 이내의 모니터 정보를 읽는 행동은 지나치게 많다. 정보의 취합, 취합분의 재정리를 하다 보면 심신이 날서고 쇠약해지는 것만 같다. 아마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요리에 취미를 붙여서 채소와 과일, 고기를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반드시 하루에 1시간은 바깥바람을 쐬고 걷고 달리기를 시도한다. 자기 전엔 스트레칭을 하며 몸의 이완과 긴장 상태에 세밀하게 집중하는데, 이 행동들은 어느정도 강박적이다. 질 좋은 외/내부 자극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건강이나 생활이 무너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서이다. 그럼 이 불안을 직면하려면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하면 역시 가장 효과 좋은 행동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사적 활동으로 독서와 글쓰기는 얽매임이 없다.(북클럽은 과제가 있지만..) 특히 종이책이 알려주는 여유가 좋다.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고, 긴 문장 어디를 언제 들춰보아도 필요한 만큼 가져가도록 하는 재촉없음이 좋다. 요즘과 같은 만성불안의 시대에 응답의 의무가 없는 관계가 얼마나 안락함을 주는 지 모른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 영상도 적게 보는 편이고, 요새는 음악을 들을 때도 사람 목소리가 없는 걸 찾아 듣고는 한다. 시, 청각의 과잉 활성화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그렇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까운 시야에 있는 정보를 특히 생생하게 느끼고 만다는 사실을 늘 인지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너무 많은 큰 일들이 테크 관계자들에 의해 주의 탈취를 목적으로 벌어지면서, 결국 개인은 실제로 큰 일과 작은 일, 정말로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환각을 만드는 모니터와, 환각에 취한 머리로 구성되는 현실은 ai가 ai생성자료를 재학습하다가 망가져가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오래 된 친구와의 대화를 되새긴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한다면 요즘 식으로는 사귄 연수, 나누었던 대화의 종류, 금전 도움을 준 적이 있는가와 같은 식으로 행동을 세분화해서 정량화된 기준을 만들어보여 평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진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우정이란 상대방의 첫 인상을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의외로 마음이 약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다가, 그가 나를 생각도 못 해 본 의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매번 대화에서 오해와 미지, 감동을 경험하는 그 자체라는 것이다.
복잡하고 과제가 많은 세상이다보니 사람들은 자꾸만 최선의 답을 찾게 된다. 최선의 답을 거듭하다 보면 가장 빠른 속도로 안정이라는 영원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영원이란 죽음 이후를 말한다는 걸 사람들은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채로 잊고 말게 된다.
북클럽 오리진을 통해 몰랐던 책을 접하고, 몰랐던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근황을 전해 들으며 나는 내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다른 분들을 보고 몰랐던 인상을 매번 깨닫듯, 다른 분들도 나를 보고, 때로는 부자연스러울 수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수용해주고 계심을 참여를 거듭할 수록 실감한다. 읽고, 적고, 말한다는 누적성 요소가 더해지기에 매번 의미를 새로 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눈 앞의 사람들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희망으로 삼으려 마음에 쥐는 사람만이 ai시대의 파급력을 견뎌낼 것이고,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시도는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이 해왔고, 해야 하는 일과 다른 게 없기도 하다.
병근 님, 출간 축하드립니다. 사피 님들 항상 제게 가르침과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리진 멤버의 지분이 이 책에 있다니 뿌듯합니다.
사적 활동으로 독서와 글쓰기는 얽매임이 없다.(북클럽은 과제가 있지만..) 특히 종이책이 알려주는 여유가 좋다.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고, 긴 문장 어디를 언제 들춰보아도 필요한 만큼 가져가도록 하는 재촉없음이 좋다. 요즘과 같은 만성불안의 시대에 응답의 의무가 없는 관계가 얼마나 안락함을 주는 지 모른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 영상도 적게 보는 편이고, 요새는 음악을 들을 때도 사람 목소리가 없는 걸 찾아 듣고는 한다. 시, 청각의 과잉 활성화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그렇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까운 시야에 있는 정보를 특히 생생하게 느끼고 만다는 사실을 늘 인지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너무 많은 큰 일들이 테크 관계자들에 의해 주의 탈취를 목적으로 벌어지면서, 결국 개인은 실제로 큰 일과 작은 일, 정말로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구분을 하지 못하는 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환각을 만드는 모니터와, 환각에 취한 머리로 구성되는 현실은 ai가 ai생성자료를 재학습하다가 망가져가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오래 된 친구와의 대화를 되새긴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한다면 요즘 식으로는 사귄 연수, 나누었던 대화의 종류, 금전 도움을 준 적이 있는가와 같은 식으로 행동을 세분화해서 정량화된 기준을 만들어보여 평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진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우정이란 상대방의 첫 인상을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의외로 마음이 약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다가, 그가 나를 생각도 못 해 본 의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매번 대화에서 오해와 미지, 감동을 경험하는 그 자체라는 것이다.
복잡하고 과제가 많은 세상이다보니 사람들은 자꾸만 최선의 답을 찾게 된다. 최선의 답을 거듭하다 보면 가장 빠른 속도로 안정이라는 영원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영원이란 죽음 이후를 말한다는 걸 사람들은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채로 잊고 말게 된다.
북클럽 오리진을 통해 몰랐던 책을 접하고, 몰랐던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근황을 전해 들으며 나는 내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다른 분들을 보고 몰랐던 인상을 매번 깨닫듯, 다른 분들도 나를 보고, 때로는 부자연스러울 수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수용해주고 계심을 참여를 거듭할 수록 실감한다. 읽고, 적고, 말한다는 누적성 요소가 더해지기에 매번 의미를 새로 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눈 앞의 사람들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희망으로 삼으려 마음에 쥐는 사람만이 ai시대의 파급력을 견뎌낼 것이고,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시도는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이 해왔고, 해야 하는 일과 다른 게 없기도 하다.
병근 님, 출간 축하드립니다. 사피 님들 항상 제게 가르침과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리진 멤버의 지분이 이 책에 있다니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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