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을 읽는 동안 겪은 경험을 공유합니다.
2411 시즌 - 책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2025-01-16 03:24
전체공개
고백하자면 저는 출판계의 '빛과 소금'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하면, SNS 유저의 질문에서 시작된 인터넷의 '밈(meme)'중 하나입니다. 한 유저가 "쌓아놓은 책을 다 읽지 않고 다른 책을 사들이는 자들을 뭐라고 부르나요?" 라는 자조적인 물음을 게시하자 이에 다른 유저가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요" 라고 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역시 읽지도 않고 있는 책들을 열심히 모아 꽂아두고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내게 필요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들이 얌전히 꽂혀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입니다.
무엇을 읽던간에, 독서를 시작 할 때면 책의 제목과 목차를 읽으며 '과연 저자는 무엇을 전하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했을까?' 라는 궁금증에 나름의 추측과 기대를 덧붙이곤 합니다. 과연 독서를 통해 어떤 문장을 만나게 될 지, 얼마나 공감하게 될 지, 얼마나 많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인지, 몇 회독을 해야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인지, 몇 번이나 감동하게 될 것인지 또는 아쉬워하게 될 것인지 기대하는 점을 미루어보아 독서를 싫어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책장에 손을 뻗어 책 한 권 꺼내들고 읽고자 하는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상하리만치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바로 '효율'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독서를 통해 깨닫고 제게도 '효과적(제왕적) 이타주의'를 추구하는 면이 습관으로 자리잡혔음을 느꼈습니다. 분명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굉장히 많은 주의를 빼앗겨 왔기 때문이겠지요.
친구들끼리는 '당장은 읽지 않을 책'을 사고는 싶은데 책장에 꽂아둘 자리가 부족할 때 "내게 부동산 문제가 있어"라는 표현들이 오가곤 합니다. 빈틈없이 채워진 책장을 보고 있으면 읽기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는 것은 다소 귀찮으면서도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의견을 접하고 정보를 흡수하고 싶다는 제 욕심이 느껴집니다. 여느날과 같이 책을 읽지는 않고 책장을 들여다 보던 저는 이번 독서를 시작하기 직전에 어떤 끔찍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여기 꽂힌 책들을 전부 한 번씩 읽고,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메모화 해서 정보만 아카이빙 한 뒤에 책 자체는 팔거나 기증하자! 정말 맘에 들었던 책만 남기고 싹 비우는거야. 그러면 다른 책을 사서 꽂을 수 있겠지", 어찌나 기발해보이던지... 마침 최근에 유튜브에서 '기록학자가 알려주는, 기억에 오래남는 메모법' 이라는 영상을 봤습니다. 일단은 찬찬히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파악한 뒤에 책을 덮고 주된 내용의 흐름을 기억에 따라 메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이지 쉽지 않더군요. 읽으면서 파악한 줄 알았던 문장들은 메모를 적어보려고 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읽는 것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는 걸 실감하면서 어렵사리 책 한권을 요약해보니, 생각처럼 간단히 정리되지도 않았고 적어간 내용도 메모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장황해졌습니다. 특히나, 독서중에 깊게 공감갔던 문장들을 곁가지라는 마냥 쳐내고 요약을 하자니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런 요약 작업을 두어권 해보고 나서, 이번 책인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도 똑같은 방식으로 요약하며 읽어갔습니다. (해명부터 하자면, 책은 쭉 소장할 것이지만 내용의 흐름을 더 잘 파악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5부에 이르기까지, 1부씩 끊어서 읽고 요약하며 주요한 내용을 적었습니다. 저자이신 병근님이 북클럽 오리진 모임때에 얘기해주셨던 흥미롭고 재밌는 연구내용이나 학자들의 견해들, 신화나 일화들을 각 장마다 반갑게 읽고 나서 요약을 시작하고자 책을 잠시 덮고 메모지를 꺼내면 특히 공감가던 어떤 의견들이나 문장들을 메모지에 전부 포함시켜 적지 못하자 못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메모지에 적지 않은 내용들이라고 해서 중요치 않다고 느낀 문장은 한 줄도 없었습니다. 6부를 읽을 때 비로소 제가 어느 면 뱅크먼프리드식의 사고방식에 동조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느꼈습니다. 이제껏 적었던 메모지들을 다시금 살펴보니, 도저히 책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메모를 하며 읽는 것은 문장마다 드는 생각을 적어보며 저자와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또 흐름을 축적하며 파악하기 위해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만 정보만 쭉 뽑아 가지는 것이 진정 효율적인 독서이리라는 추측은 빚나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소유하려 드는 것 보다 문장을 읽을 때 혼란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이자 체험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텍스트의 모호함과 복잡함은 결함이 아니라 본질"에 속하니까요 (136P). 황당한 발상에 허무한 시도로 그쳤지만 마침 이 책을 읽는 시점과 맞물린 덕에 진실된 교훈을 얻게 되어 기쁩니다. 게다가 그 어떤 책도 처분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더더욱 다행스럽지요.
사실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적고 싶은 말이 한가득 있습니다. 최근에 주의력을 얼마나 잃었는지, 감각이 얼마나 수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진심으로 고민하며 혼란스러운 나날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끝나면 지쳐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듭니다. 요며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보고 성찰하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어두고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자신을 돌보고 자아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다듬는 대신 절제를 팔아 넘기고 충동을 키워가는 선택을 해온 것이죠. 기업들을 위한 훌륭한 자원으로서 꾸준하게 주의를 팔아 넘길 자세가 만들어지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섬뜩하게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좀 제대로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속에 길을 잃으면 글을 적어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던 제게 지난 몇년간 "생각을 그만해라,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라는 게시가 외부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모릅니다. 고민이 깊어질 것 같을 때에는 생각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웃고 떠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고, 그러려면 유행하는 영상도 봐야하고 밈도 알아야 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접하는 중간중간 "스타플레이어"가 전하는 성공스토리 컨텐츠들이 추천되고,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어야 하는 게 아닌지 불안해지면 읽지도 않을 포스트 탭을 73개씩 띄워뒀습니다. (과장없이 73개 입니다.) 뭔가를 잘하고 싶어지면 일단 그것을 잘하는 사람의 영상을 찾아 봅니다. 주변과 자신을 돌볼 줄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능력주의에 수동적으로 따라갑니다.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으면 어딘가 멍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앞서 오는 사람과 뻔히 눈을 마주치고서도 서로를 피하지 못해 부딪힙니다. 마치 길에서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데에 쓸 주의력이 부족해진 느낌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식사시간에 서너명이 함께 밥을 먹는 내내 인스타그램에서 본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가 단절되면 각자 핸드폰을 켜고 숏폼을 시청하고, 웃긴 것을 서로 보여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게 기술을 어떻게 사용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은 절실한 생존 문제로 와닿습니다.
Life is for living 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삶을 "살아가는"것을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면 그 결론은 항상 자신과 주변에 대한 돌봄입니다. 우선은, 성찰을 위한 사고력을 길러나가기 위해 길고 복잡한 글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것에서 걸어나가야겠습니다. 삶의 주도권과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재활로서 말입니다.
(고백적인 내용과 어울리는 듯 해서 편지처럼 구어체로 작성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하면, SNS 유저의 질문에서 시작된 인터넷의 '밈(meme)'중 하나입니다. 한 유저가 "쌓아놓은 책을 다 읽지 않고 다른 책을 사들이는 자들을 뭐라고 부르나요?" 라는 자조적인 물음을 게시하자 이에 다른 유저가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요" 라고 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역시 읽지도 않고 있는 책들을 열심히 모아 꽂아두고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내게 필요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들이 얌전히 꽂혀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입니다.
무엇을 읽던간에, 독서를 시작 할 때면 책의 제목과 목차를 읽으며 '과연 저자는 무엇을 전하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했을까?' 라는 궁금증에 나름의 추측과 기대를 덧붙이곤 합니다. 과연 독서를 통해 어떤 문장을 만나게 될 지, 얼마나 공감하게 될 지, 얼마나 많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인지, 몇 회독을 해야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인지, 몇 번이나 감동하게 될 것인지 또는 아쉬워하게 될 것인지 기대하는 점을 미루어보아 독서를 싫어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책장에 손을 뻗어 책 한 권 꺼내들고 읽고자 하는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상하리만치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바로 '효율'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독서를 통해 깨닫고 제게도 '효과적(제왕적) 이타주의'를 추구하는 면이 습관으로 자리잡혔음을 느꼈습니다. 분명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굉장히 많은 주의를 빼앗겨 왔기 때문이겠지요.
친구들끼리는 '당장은 읽지 않을 책'을 사고는 싶은데 책장에 꽂아둘 자리가 부족할 때 "내게 부동산 문제가 있어"라는 표현들이 오가곤 합니다. 빈틈없이 채워진 책장을 보고 있으면 읽기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는 것은 다소 귀찮으면서도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의견을 접하고 정보를 흡수하고 싶다는 제 욕심이 느껴집니다. 여느날과 같이 책을 읽지는 않고 책장을 들여다 보던 저는 이번 독서를 시작하기 직전에 어떤 끔찍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여기 꽂힌 책들을 전부 한 번씩 읽고,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메모화 해서 정보만 아카이빙 한 뒤에 책 자체는 팔거나 기증하자! 정말 맘에 들었던 책만 남기고 싹 비우는거야. 그러면 다른 책을 사서 꽂을 수 있겠지", 어찌나 기발해보이던지... 마침 최근에 유튜브에서 '기록학자가 알려주는, 기억에 오래남는 메모법' 이라는 영상을 봤습니다. 일단은 찬찬히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파악한 뒤에 책을 덮고 주된 내용의 흐름을 기억에 따라 메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이지 쉽지 않더군요. 읽으면서 파악한 줄 알았던 문장들은 메모를 적어보려고 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읽는 것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는 걸 실감하면서 어렵사리 책 한권을 요약해보니, 생각처럼 간단히 정리되지도 않았고 적어간 내용도 메모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장황해졌습니다. 특히나, 독서중에 깊게 공감갔던 문장들을 곁가지라는 마냥 쳐내고 요약을 하자니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런 요약 작업을 두어권 해보고 나서, 이번 책인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도 똑같은 방식으로 요약하며 읽어갔습니다. (해명부터 하자면, 책은 쭉 소장할 것이지만 내용의 흐름을 더 잘 파악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5부에 이르기까지, 1부씩 끊어서 읽고 요약하며 주요한 내용을 적었습니다. 저자이신 병근님이 북클럽 오리진 모임때에 얘기해주셨던 흥미롭고 재밌는 연구내용이나 학자들의 견해들, 신화나 일화들을 각 장마다 반갑게 읽고 나서 요약을 시작하고자 책을 잠시 덮고 메모지를 꺼내면 특히 공감가던 어떤 의견들이나 문장들을 메모지에 전부 포함시켜 적지 못하자 못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메모지에 적지 않은 내용들이라고 해서 중요치 않다고 느낀 문장은 한 줄도 없었습니다. 6부를 읽을 때 비로소 제가 어느 면 뱅크먼프리드식의 사고방식에 동조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느꼈습니다. 이제껏 적었던 메모지들을 다시금 살펴보니, 도저히 책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메모를 하며 읽는 것은 문장마다 드는 생각을 적어보며 저자와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또 흐름을 축적하며 파악하기 위해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만 정보만 쭉 뽑아 가지는 것이 진정 효율적인 독서이리라는 추측은 빚나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소유하려 드는 것 보다 문장을 읽을 때 혼란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이자 체험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텍스트의 모호함과 복잡함은 결함이 아니라 본질"에 속하니까요 (136P). 황당한 발상에 허무한 시도로 그쳤지만 마침 이 책을 읽는 시점과 맞물린 덕에 진실된 교훈을 얻게 되어 기쁩니다. 게다가 그 어떤 책도 처분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더더욱 다행스럽지요.
사실은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적고 싶은 말이 한가득 있습니다. 최근에 주의력을 얼마나 잃었는지, 감각이 얼마나 수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진심으로 고민하며 혼란스러운 나날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끝나면 지쳐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듭니다. 요며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보고 성찰하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어두고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자신을 돌보고 자아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다듬는 대신 절제를 팔아 넘기고 충동을 키워가는 선택을 해온 것이죠. 기업들을 위한 훌륭한 자원으로서 꾸준하게 주의를 팔아 넘길 자세가 만들어지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섬뜩하게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좀 제대로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속에 길을 잃으면 글을 적어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던 제게 지난 몇년간 "생각을 그만해라,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라는 게시가 외부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모릅니다. 고민이 깊어질 것 같을 때에는 생각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웃고 떠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고, 그러려면 유행하는 영상도 봐야하고 밈도 알아야 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접하는 중간중간 "스타플레이어"가 전하는 성공스토리 컨텐츠들이 추천되고,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어야 하는 게 아닌지 불안해지면 읽지도 않을 포스트 탭을 73개씩 띄워뒀습니다. (과장없이 73개 입니다.) 뭔가를 잘하고 싶어지면 일단 그것을 잘하는 사람의 영상을 찾아 봅니다. 주변과 자신을 돌볼 줄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능력주의에 수동적으로 따라갑니다.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으면 어딘가 멍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앞서 오는 사람과 뻔히 눈을 마주치고서도 서로를 피하지 못해 부딪힙니다. 마치 길에서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데에 쓸 주의력이 부족해진 느낌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식사시간에 서너명이 함께 밥을 먹는 내내 인스타그램에서 본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가 단절되면 각자 핸드폰을 켜고 숏폼을 시청하고, 웃긴 것을 서로 보여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게 기술을 어떻게 사용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은 절실한 생존 문제로 와닿습니다.
Life is for living 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삶을 "살아가는"것을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면 그 결론은 항상 자신과 주변에 대한 돌봄입니다. 우선은, 성찰을 위한 사고력을 길러나가기 위해 길고 복잡한 글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것에서 걸어나가야겠습니다. 삶의 주도권과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재활로서 말입니다.
(고백적인 내용과 어울리는 듯 해서 편지처럼 구어체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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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빛과 소금부터 기록학자의 메모법, 알고리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성공 콘텐츠, 그리고 ‘자아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다듬는 대신 절제를 팔아 넘기고 충동을 키워가는 선택’까지.. 읽는 내내 깊이 공감했습니다. 절제를 팔아 넘긴다는 표현이 정말 뼈아프네요. 이 글을 통해 왜 ‘지금’ 읽기가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언급하신 재활 운동은 저도 꼭 실천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