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이 곧 지능이다!
늘보리
2024-04-17 23:54
전체공개
이 책을 읽으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 무게추가 긍정적인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흙빛투성이였던 미래가 장밋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책 한 권으로 이 만큼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도 오랜만이다. 대부분은 막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독서를 통해 구체적인 증거를 갖게 되면서 더 지지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지금껏 살면서 특정 대상에 대해 막연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면, 이것도 ‘제 3의 지식'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인공지능과 비교도 안 되게 느린 속도로 이루어졌지만 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기계, 컴퓨터, 로봇, 인간성 등에 대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쌓아온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면, 이 책은 나에게 완벽히 ‘블랙스완' 효과를 일으켰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제로 한 책을 읽는 것의 묘미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인간을 이미 문자 지식 지능을 탑재한 사이보그1이라고 규정하고, AI시대의 인간은 인공지능 패러다임을 탑재한 사이보그2로 진화하는 거라고 규정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이미 고도의 인공지능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 바로 문자라는! 문자 사용이, 특히 긴 텍스트를 읽고 쓰는 행위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초래한 변화들에 주목하게 된다. 현대 문명의 폐해, 특히 자연과의 단절로 인한 생태 위기 문제를 다룰 때 수렵채집 시절의 인간이 누렸을 노마드적 자유, 단조롭고 자연과 연결된 삶 등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당시의 인간은 우리보다 훨씬 단조롭고 근시안적인 사고 체계를 가졌을 것임을 떠올리니 현대인이 여기서 모티프를 얻은 삶의 방식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었다. 현대의 노마드족은 자연과 교감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자극을 찾아 쉼 없이 이동하고 있지 않나. 이건 지속 가능한 걸까. 만약 인공지능 시대가 열려 인간의 사고방식은 물론 사회문화적 맥락까지도 인공지능 패러다임에 따라 작동된다면, 미래의 인간(사이보그2)은 현 인류(사이보그1)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문명의 진보에 만족할까, 아니면 사이보그2의 문제 해결을 위해 사이보그1을 소환하고 이들의 세계를 동경할까. 사이보그2가 동경하게 될 사이보그1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인류 문명이 고도로 복잡해져 더 이상 과학에 기반한 확정적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으로 복잡한 문제에 최적화된 해결책을 신속히 내지 않으면 문명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이상 기후와 국가 간 분쟁, 정치적 극우화, 자본주의의 오작동 등을 보면 현 인류는 그 자체로 문제해결능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이 같은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도구가 인공지능이며, 인공지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인간이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마인드셋과 사회문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지식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환경적 맥락에 비춰 최적화된 해결책이기에 실패를 감수하고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문명의 고도화가 가속되는 현실은 기본 전제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의문도 들었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의 현재 수준의, 혹은 그 이상의 욕망 추구를 허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선택이 지구생태계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건 아닌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의 안위는 외면한 채 고도화된 지능으로 개발해낸 우주기술로 지구밖 행성을 찾아 떠나면 되는 건지 고민된다.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분리된 채 완벽히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데 대해 사이보그1에 불과한 인간(나…)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에 인간은 물론, 인간 외 종까지 아우르는 종 민주주의도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인공지능 패러다임이 잘 정착했을 때 인간 사회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해질 수 있다는 점은 솔깃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인공지능 시대에는 확정적 지식이 소수의 특권층을 양산하고 다수는 사다리를 올라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지난한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또한 이론적으로 그렇지, 실제 인간 환경에서 어떤 결과가 빚어질 지는 닥쳐봐야 안다.) 누구든지 원하는 일을 충실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습득한 지식들의 쓸모가 발견되리라는 말(점들은 어떻게든 연결된다…)이 거창한 꿈 내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다수의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AI시대에는 ‘연결이 곧 지능’이 된다. 연결이 지능인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는 생각도 든다. 다재다능한 한 사람보다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여러 사람이 연결되었을 때 훨씬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반면,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인물, 단체 등과 연결되어 색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세계를 넓혀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패러다임 영역에 발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협동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우리 시대의 최대 화두로 ‘연결'이 주목받는 현상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확정적 지식은 깊은 잠에 빠진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도 떠오른다. 기존 이론에 의지해 내린 결론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나와 세계에 대한 확정적인 지식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유지하고 다른 존재들과 꾸준히 연결되려는 시도가 인공지능 시대를 앞둔 사이보그1이 최적화 방식으로 내놓을 수 있는 최선책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