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읽기가 남긴 불편함이 영혼의 성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411 시즌 - 책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2025-01-17 00:20
전체공개
크기와 두께를 보고 부담 없는 책이라 생각했지만, 두 번을 읽고 흐름을 꼼꼼히 정리한 후에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돌봄에 대한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1부에서 읽기가 필요한 시대의 위기를, 2부에서 읽기가 이끌어 줄 돌봄의 결실을 따라가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대입해 보았다.
이 책을 읽는 과정 또한 앎과 연결된 읽기 그 자체였다. 돌봄에 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실재하지만 무감각했던 자아의 본성이 읽기로 확장되고 통합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발견과 체험의 동시적 설득이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크게 두 개의 갈래로 이해했다. 하나는 읽기가 필요한 시대적 배경을 포함하여 '왜 읽기가 필요한가'에 대한 내용.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읽기의 효용이 만들어줄 '돌봄의 시선'이었다.
읽기의 효용과 그것이 발현되는 오묘하고 복잡한 인간 정신에 대한 설명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충분한 이해와 동시에 흥미로움과 신비함을 느끼게 했다. 누구보다 공감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읽기가 길러준 다양한 정신적 성장과 성찰을 경험했고 그에 대한 큰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읽기 덕분에 그래도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무겁게 남은 것은 읽기가 키워줄 '돌봄의 시선'이었다. 읽기의 효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자아가 정신적 성장을 거쳐 도달하는 곳이 결국 돌봄이라는 사실에 부담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숭고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리스크와 불안을 감수해야 허락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돌봄이 나처럼 현실과 이상 둘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어정쩡한 존재에게 배금주의보다 덜 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타적 가치가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문장을 마음속으로 동경하며 살았지만 최근 돈 문제로 이런저런 공허함을 겪고 나니 마음 따뜻하게 피어나는 열정보다 의지가 꺽이는 마음이 앞선다.
돌봄은 숭고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읽기가 돌봄의 시야를 확장한다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숭고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이상과 순수에 취해 나 하나 주어진 몫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연결될까 두렵다. '아름다운 일은 (이루기)어렵다'라는 말이 더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혹시 이 책의 저자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생존의 기본 토대부터 튼튼히 닦아놓고 그다음에 읽기와 돌봄의 자아를 가꿔보라는 숨은 의도가 있던 건 아닐까?' 하며 민망한 타협안(?)을 떠올려본다.
삶에 대한 관찰도 내 마음이 비추는 것을 보게 되는 거 같다. 요즘들어 자본주의, 저성장, 경쟁, 디지털의 시너지로 만들어진 고난이도(?) 세상 살이를 다급함과 울상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기승전돈이 아니면 의미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게 너무 당연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너무 순진하게만 살았나 걱정과 혼란이 앞선다. 그런데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비슷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거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돌봄의 가치가 부채감처럼 다가왔다. 놓치 말아야 할 것들을 슬며시 내려놓는 와중에 주목당한 기분이랄까. 원심력을 이겨내며 겨우 한 걸음씩 버티며 사는거 같은데 그 이상을 해야만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거 같아서 숨이 차다. 스티글레르가 말한 '진정한 사고' 이전에 '계산적 사고'로부터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을거 같아 씁쓸하게 고개를 떨군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당장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지 말고 주체적 사고 능력의 부재를 걱정하며 돌봄의 이상을 추구하자는 의지가 이상하게도 무기력을 남긴다. 돌봄, 타인과 세상을 향한 자아의 확장이 좋은 의미를 제쳐두고 마음에 부담을 준다.
돌봄의 힘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음을 이해하면서도 소수의 바람으로 남을까 걱정이 앞선다. 반성과 두려움 그리고 막연한 부러움이 동시에 스친다. 돌봄의 대의와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겨우 매달려 있던 생존 열차에서 안전바를 스스로 올리는 일은 아닐지 주위 눈치부터 보게 된다. 어쩌다 이지경으로 영혼이 위축됐나 징그럽기도 하다.
읽기는 분명 마음의 길을 내어주고, 지적 생명력에 촉촉한 생기를 머금게 하는 경이로운 활동이다. 그러나 오롯이 그 경이로움에 취해 온갖 좋은 것들을 서로 권하고 즐길 수 없는 세상인 거 같아 쓸쓸하다. 그럴수록 돌봄의 읽기를 이해하는 한 개인 개인부터(각자 자신부터) 마음을 모으고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어 타인에게 먼저 손내밀고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대안임을 안다.
삶의 철학을 따라산다는 게 얼마나 용기 있는 자의 실천인지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읽기는 인류 번영을 만들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과 내면의 확장을 제공하지만 애써 반쪽만 즐기고있는 거 같다. 어딘가로 이끌어 주려는 글의 힘에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자중시키고 다시 한번 프롤레타리아의 길을 뒤적거린다. 읽기가 선사하는 성찰적 앎과 타인에 대한 지속적 관심은 지적 쾌감 정도로 조용히 즐기고, 실천적 돌봄의 의지를 슬그머니 덮는다. 좁아진 마음이 누군가를 위한 환영의 길이 되기까지 더 많은 읽기와 사색의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이 책을 읽고 저자를 비롯하여 바람직한 것을 위해 기꺼이 삶의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모든 돌봄의 개척자들에게 존경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남겨준 마음의 불편이 언젠가 나를 거치며 또 다른 누군가의 불편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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