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은 숨어있지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재발견할 때 느끼는 것이 아닐까?

2411 시즌 - 책 <인챈트먼트>

호떡
2025-02-19 21:43
전체공개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라는 책 뒷장의 쓰인 표현이 와닿았다. 매혹이란 그런 종류의 공감이자 감탄인 거 같다. 매혹적인 어떤 순간은 분명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의 정보이면서도,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고도 동시에 이해시킬 수 있는 공감대가 존재한다. 주로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이나 매우 섬세한 존재의 발견과 같은 순간에 매혹을 느끼는 거 같다.

이번 독후감은 작가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에 대해 찬사를 남기는 것보다 근래 나의 시선을 붙잡은 매혹은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고 남기기로 했다. 많은 매혹의 순간이 있겠지만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말하고 싶다. 그 또한 개인적 경험이면서도 보편적 경험일 거로 생각한다.

집에서 1분 거리에 공원이 하나 있다. 이름은 만석공원. 작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1.5km 정도의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다. 원래 일산에 살다가 이 공원 근처로 이사 온 데는 사연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병원에서 걷기 운동을 많이 하라고 권했다. 근처 집값이 싸고, 공원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근처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8년을 넘게 살고 있다. 첫 느낌은 그다지 기분 좋은 공원은 아니었는데 세월을 지나 보내고 돌아보니 어느새 크고 작은 추억이 남아 있는 공원이 되었다. 마음에 괴로움이 있을 때이어폰을 귀속에 구겨 넣고 한없이 걸어보기도 했고, 둘레길에 가득 피어있던 벚꽃을 보면서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취해본 적도 있었다. 그 순간이 너무 낭만적이어서 주변의 공기에서까지 분홍빛 향기가 날 듯한 순간이었는데 사진에 차마 다안 담기는 답답함에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초여름이나 초가을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도시락을 싸들고 데이트를 했던 적도 있다.

만석공원은 주로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아침 저녁으로로 다른 계절과 다른 시간대에 러닝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조성된 지 얼마 안 된 공원과 다르게 자연의 느낌이 아주 섬세하게 자리 잡은 모습에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만석공원은 원래 만석거라는 농업용 저수지였는데, 조선 정조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힘이 나무 하나하나, 물가의 잡초 하나하나가 서로 부대끼고 동고동락하면서 조화롭게 자리 잡은 게 아닐지 생각했다. 계산하고 인공으로 만들 수 없는 복잡함과 자연스러움이 무언가 다른 감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넓고 푸르고 잔잔한 물가 위에 자잘하게 부서지는 햇빛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겠지만, 그 뒤로 멀리 보이는 건물들, 길 따라 여유 있게 자기 생기고싶은 대로 오랜 시간 자라난 나무들이 어우러지면서 말 그대로 그림 같은 장면을 만든다. 그런데 만석공원의 매혹은 단순하지 않다. 이게 정말 큰 만석공원의 매력인데, 아침과 해가 질 녘의 느낌이 또 다르고, 가을과 여름의 느낌이 또 다르다. 아침에는 옅은 안개에 햇빛이 반사되면서 희망과 오묘한 기대감 같은 것이 공기를 채우고, 해가 질 녘에는 옆에서 길게 쏟아지는 황금 빛이 저수지 물을 너무나 아름답게 물들인다. 저녁에는 저수지 위로 색온도가 낮은 가로등 불빛과 멀리 있는 건물들의 불빛, 그 위로 달빛과 같은 것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모여서 또 다른 느낌을 준다. 5월이면 둘레길 전체를 양쪽에서가득 메운 벚꽃잎으로 동화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고, 여름에 한 번씩 하는 축제에서는 불꽃놀이가 하늘에서 터지는 순간, 동시에 물 위에서도 반사된 불꽃이 일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공원에 달리기하러 나갈 때마다 이 별거 없는 동네 공원에 이처럼 아름다운 순간들이 매번 다르게 숨어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끔 완벽하다 싶은 순간에는 카메라를 꺼내기도 하지만 역시나 눈에 담는 거처럼 사진첩에 담는 것은 실패하고 만다.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으며, 그것이 시각적 정보 이상의 무엇이며, 잘은 모르지만, 나의 감각을 통해 읽어지고 있기에 내가 느끼는 이 순간의 아름다움과 카메라에 담긴 아름다움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추론할 뿐이다. 카메라로 풍경을 담는 것은 매번 시도하지만, 매번 아쉬움을 느끼며 포기한다.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 지금, 이 순간 이곳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써놓고 보니 카메라뿐만 아니라 글로도 그 감동을 차마 다 담을 수는 없는 거 같다. 매혹은 어느 순간에 여러 조건이 맞물리면서 나를 터치하고 동시에 흩어지는 성질이 있는 거 같다. 그래서 매번 지나는 같은 장소도 훅하고 마음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고, 지겹고 무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거 같다. 또한 그 때문에 매혹의 순간을 기억이 아닌 다른 형태의 영구적 저장 장치에 담아두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혹을 자연물에서 더 많이 경험하는 거 같다. 어떤 요소가 시선을 붙잡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걸까 궁금하다. 아마도 직접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조화로운 모습에서 그런 충동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목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