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의례.
2503 시즌 - 책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독후감
2025-04-17 00:58
전체공개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라는 제목 자체만으로 나를 둘러싼 의례를 먼저 떠올렸다.
독후감이 늦어진 핑계를 찾자니, 공동체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의례(!) 준비를 하느라. 라고 해야겠다. 다음주엔 누군가에게 의례적인 위촉장을 선사해야 한다. 공고한 공동체. 위촉패 한 장으로 그게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난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에 위로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집엔 일년에 8번의 제사와, 1번의 시제가 있으며, 설날, 추석의 차례가 있다. 혹자는 우리집에 들어오는 며느리 걱정을 했고, 난 항상 엄마의 숨쉴 틈 없는 종가집 며느리의 무게를 걱정스러워했던 정도였는데, 나의 이 무의식의 생각들이 스스로에게 중요성을 주입했던 일이었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영혼은 의례에 대한 갈망이 깊다는 작가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제사라는 의례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시간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추억했고, 아버지를 통해 듣는 증조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를 상상했으며, 새벽마다 시골집 마루 끝에서 조상님들께 가족들의 안부를 구하는 순간이 떠오르는, 그리고 결국 나로 귀결되는 현재와 이후의 미래에 대해 계획하는 시간으로 작동한다. 그것이 책이 말하는 광범위한 연결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 어떤 질서보다 공고한 지지라고 생각한다. 돌아보고 정리하는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우리의 일상에 의례가 작동하는 순기능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줌 회의 시작 전 10년 전 오늘에 대한 묵념을 (혼자 조용히) 했다.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고 아무도 무엇을 하자고 하지 않았다. 무척 공적인 자리였고, 무척 정치적인 자리였지만 다만 한마음이었다는걸 나는 느끼고 말았고, 위로가 되었다. 홍길동 같은 분위기였지만 감히 정치적 중립 따위를 논하자니 비굴하고, 그저 말없이 잊지 않았음을 나누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주말에 달리기 행사에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엄밀히 말하자면 모두 국기를 향해 있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문득 나도 해야하는데 하며 자동으로 손을 올렸다), 손을 내리고 나서야 (책을 염두해두고 있던터라) 이 의례에 대해선 좀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 왜, 어떤 행사들에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했으며, 어떤 경기장에선 애국가 부르는게 당연해졌고(이건 어쩌면 전세계 공통), 여기에 대해 거부하면 종교적인 거부라며 낙인을 찍혀갔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또한 이 책 덕분이겠으나, 나 보다 국가가 먼저라는 대대손손의 학습된 행동이 무의식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종교적으로는 카톨릭의 고난주간의 판공성사와 주말엔 부활절 전야미사가 남아있다. 종교야말로 머리와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영역으로 분리하고 있는데, 나의 종교적인 행동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 때문에 판공성사 및 고해성사라는 큰 숙제앞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가 되었고, 책에서도 말하는 영문 모를 행위와 목표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유지하는 나만의 의례로 남아 있다.
세월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문득 떠오른 의례....는 등교하면 당연히 복창해야했던 국민교육헌장이 있었다. 이건 조금 끔직한 의례이자 기억인데 못외우면 출석부로 친구들이 머리를 맞았던걸로 기억한다. 나도 잘 못외웠겠지만 워낙 쪼꼬미여서 때릴데가 없다는 이유로 안맞았던것도 기억난다. 그시절의 국민교육헌장이 어떤 의도이건간에 우리가 예측하는 그 어떤 이유로 복창하고 다녔겠지만, 선지자적 선생님들 덕분에 고등학교땐 안외워도 되는 것에 행복했었다. 책에선 그 어떤 소용이 없어 보이는데도 진정으로 없어서는 안되고 신성한 뭔가로 경험된다? 라고 했지만 어떤 의례는 그다지 소용이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기억되는 의례 중에 누군가 나에게 왜 수행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우리의 전통이에요. 라고 말할 만한 것은 몇 가지 없다. 다만, 그간 마음속으로 추억하고 기억했던 우리집 제사정도만이 나의 무의식의 의례라 할 수 있겠다. 북클럽 오리진을 통해 자주 의식하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은 이런 작지만 나만의 의례가 일상이 되어, 연대가 되는, 연기처럼 감싸는 모습일거라 상상하게 된다. 그다지 소용없는 의례가 아닌 본성이 비슷한 사람들의 공동체. 습관이 아닌 의례처럼 스며들어 조용히 그 모습이 되어가는 것 말이다.
넥서스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마음 가득이었는데, 이 책 역시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고, 가라앉는 경험을 했다. 이번달엔 꼭 만나고 싶어요.... ㅠㅠ
넥서스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마음 가득이었는데, 이 책 역시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고, 가라앉는 경험을 했다. 이번달엔 꼭 만나고 싶어요.... ㅠㅠ
댓글
저도 우리 북클럽이 정해놓은 의례?인 수욜까지 독후감!, 이것을 지키고자 만사 제쳐두고 미친듯이 책을 읽고, 서툰 독후감이지만 일빠로 올리고 나니 나름 심리적 안정감이 들더라고요.ㅋㅋ 이번 토욜에 꼬옥 뵈요~
'작지만 나만의 의례가 일상이 되어, 연대가 되는, 연기처럼 감싸는 모습', '본성이 비슷한 사람들의 공동체. 습관이 아닌 의례처럼 스며들어 조용히 그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표현 참 좋습니다. 만나서 생각을 더 나누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