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의례는 집단의 결속을 강화한다

2503 시즌 - 책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독후감

아이사갈까말까
2025-04-2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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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어느 방송에서 본 기억이 있다.
사이 나쁜 개 두마리의 관계를 개선시키려면 멧돼지 앞에 풀어놓으라는 말을 그 방송에서 누군가 했더랬다. 꽤 오래전의 기억이다. 15-20년은 더 된듯 싶어 그 당시 방송에서 내보냈던 정보들은 의심부터 해봐야한다.
그러나 살면서 느끼곤 했다. 골치아픈 공동의 적을 만나면 사람들은 친해진다. 끈끈해진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극단적 의례도 그러하다. 고통과 고난을 공유한 이들은 생리적인 변화도 공유하고 관계도 공고히하게 된다.

초등학교 매주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 모여 아침 조회시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기억이 난다. 땀삐질나던 한여름이나 손가락 자연스레 옷깃으로 올라가던 추운 겨울에 운동장에 서 있는 것이 힘들긴 하였으나 극한의 경험은 아니었다. 우리는 당시 그 의례에 참여하며 함께 지루함을 견디던 친구들을 기억하는가?

군 특수부대 훈련중 무박 행군을 하고 일주일 금식을 하며 바다에서 한시간 수영을 하고 온몸의 진을 다 빼놓은 채 쏟아지는 졸음을 찾는 군인들은 함께 생사를 넘나들던 동료들을 끔찍이 아낀다. 그들은 전쟁중에 동료에게 나의 등을 내주고 서로 목숨을 맡긴다.

극한의 경험은 집단의 결속을 강화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현대 서구권 (또는 선진국) 사회의 안정성은 의례의 역할을 감소시켰다고 말한다. 이어서 기후변화, 환경오염, 질병, 정치적 혼동이 다가오는 위기로 꼽고 있다. 이런 위기 앞에 의례활동이 힘을 낼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위기를 느끼는 또는 느끼려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따라서 결속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보기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의례가 등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의례적인 종이라고 하는데 어떤 의례가 우리 인간을 지구적 위험에서 결속시켜줄것인가?

수많은 희생을 겪으며 이런 위기를 지나가고 나서야 우리는 반복되는 재앙을 피해 의례를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기후위기로 2050년 지리적인 조건 상관없이 주위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나야 우리는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대신 4월 5일 식목일을 대대적으로 기념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극단적 위기에 앞선 미래의 의례는 현실에 즉각 도움이 되는 의례이길 바란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 숯불을 건너는 의례나 자유투를 성공하기 위해 볼을 세번 튕기고 손등에 키스를 하는 농구선수의 의례가 아니라, 미래 우리의 의례는 지구와 주위 사람의 안녕을 바라는 직접적인 극단적 의례가 되길 바란다. 일 년중 한달은 비건이 되는 의례, 대다수 인류에게 극단적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위한 신념과 결심과 사랑을 확인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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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또박사 | 27일 전

'지구와 주위 사람의 안녕을 바라는 직접적인 극단적 의례'라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