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

2503 시즌 - 책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독후감

처음처럼
2025-04-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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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결국 오고야 말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엄마와 함께 지켜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결국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이별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2025년 3월 22일. 전날 엄마의 전화를 받고 걱정이 되어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경산역까지 갈 수 있다는 역무원의 말에 1,200원을 추가로 내고 경산역에서 내렸다. 봄인데도 날이 무척 더웠다. 마치 여름처럼.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버스를 타고 친정집으로 향했다. 큰방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불과 지난주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야위어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폐렴 수치가 낮아졌고 퇴원해도 된다고 했었는데 왜 이렇게 2주 만에 뼈밖에 남지 않았을까.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겁이 났다. 이러다 정말 돌아가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왔다. 나는 아버지 얼굴에 내 얼굴을 댄 채, 울면서 “아빠, 아빠 딸로 태어나게 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대답이라도 하듯 눈물을 흘리셨다. 왜 그 말을 그때 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선망 증상 때문에 자식과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허공에 손을 뻗으며 무언가를 잡으려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를 깨끗이 목욕시켜드렸다. 평소에도 편두통이 심했던 나는 새벽 2시가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아 아버지를 한 번 쳐다보고 손을 잡아드렸고, 계속해서 깨어 있는 듯 선잠을 잤다. 하지만 아버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 엄마와 상의한 끝에 새벽 5시쯤 김해에 있는 둘째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다시 입원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은 바로 친정으로 오겠다고 했다. 엄마는 병원 갈 준비를 하며 밥이라도 먹고 가자며 부엌에 있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였다. 6시 5분,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아버지를 쳐다봤는데, 아버지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숨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무서웠다. 엄마를 부르며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상태를 설명했더니, 119에 전화하라고 했다. 119에 전화하자 심폐소생술을 하라고 해서 스피커폰으로 지시를 들으며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대고 내 체중을 실어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 했다. 가슴을 누를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 몸은 이미 근육이 다 빠져 힘을 주자마자 부서지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니 머릿속은 하얘졌다.
5분쯤 지났을까. 119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대원이 들어와 본격적인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장은 좀처럼 다시 뛰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연명치료를 원하냐고 물었다. 원한다면 기도에 호흡기를 달겠다고 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는 예전에 아버지가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던 걸 기억하고, 엄마의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가 편히 가실 수 있도록 안식을 선택했다.
그 결정이 내려지자 모든 일이 숨 가쁘게 흘러갔다. 울 여유도 없이 장례절차를 준비해야 했다. 감정보다 이성이 나를 지배했다. 아마도 맏딸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전 처음 치러보는 장례식이 막막했지만, 공무원 조직에 소속돼 있다는 덕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직원 복지의 일환으로 장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아버지의 장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는 읽는 내내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복기하면서 사람들은 상실의 경험과 죽음의 공포 같은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죽음 의례를 발전시켜 왔다는 저자의 말에 일부의 공감과 약간의 다름을 경험했다.
장례식을 치르며 슬픔을 억눌러야 했지만, 아버지의 내세가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하며 모든 절차에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저자가 말한 대로 상실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자식으로서 제대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후회,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내 가족을 챙기느라 정작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마음, 아버지가 폐렴으로 입원하셨을 때 서울 병원으로 강하게 옮기자고 주장하지 못한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런 내가 스스로 용서되지 않았다. 이 모든 감정들에 대한 용서를 빌고 싶었고, 그래서 장례식 내내 서럽게 울며 죽음 의례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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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또박사 | 27일 전

떠나는 사람, 떠나보내는 사람, 떠나기 전까지 살아 가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 위로의 형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