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은 '의례'가 될 수 있을까(^^;;)
2503 시즌 - 책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독후감
2025-04-24 05:09
전체공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된 저자의 질문을 통해 책 전체를 다시 짚어보게 된다.
“... 다가올 암울한 미래에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주고 결속을 다지고 의미감과 연속성을 제공하는 의례의 힘에 어느 때보다 크게 의지할지 모른다.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조성되기보다 종종 급조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의례가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래 세대는 우리 조상이 수천 년 동안 해 온 만큼 직관적이고 효율적으로 그 힘을 활용할 수 있을까?”
명절이면 극심한 교통 정체를 뚫고 고향에 가서 끼니마다 거창하게 차려 먹고 치우기를 반복하고 차례를 지내고 윷놀이, 고스톱 등 단체 게임(?)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 이후 모든 게 효율화되면서, 이제는 명절에 온가족이 리조트로 놀러가거나, 명절 전 가볍게 식사(주로 외식)를 하고 연휴에는 각자의 휴식을 즐기는 문화가 꽤 보편화되었다. 우리집도 더 이상 차례를 지내지는 않지만, 부침개 부치기와 송편 빚기, 설날 아침 떡국 먹고 성묘 가기만이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의례들이 사라져가고, 오락이나 휴식 중심의 기능적 활동이 주를 이룬다. 명절 연휴를 단순한 휴식으로 대체했을 때 잘 쉬었다는 기분은 들지만, 이런 상황이 매해 반복될수록 깊은 곳에서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 자리를 과거에는 의례가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의례의 특징으로 ‘수단과 목적 사이의 공백’을 들었다. 인과적으로 불투명하지만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의례와 관련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효율성을 앞세워 초고속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에서 의례가 소멸하다시피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책에서는 의례의 준비와 실제 활동에 깊이 관여한 사람일수록 의례를 거친 후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례 과정이 엄청난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놀랍다. 의례를 미화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명절증후군’으로 개인적, 사회적 에너지가 소진되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차례상 준비에 깊이 관여한 사람(특히 여성들)일수록 명절이라면 넌더리를 낸다. 의례에 수반되는 고통이 행복감으로 이어지는 요인은 무엇일까.
책에 소개된 의례들은 엄격성, 반복성, 중복성을 띠는, 좀 더 개인의 수련에 가까운 활동이다. 그리고 그 활동을 함께 수행한 이들 사이에서 강력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몇 년 전 4인 1조로 100km 걷기를 했을 때 경험이 떠오른다. 38시간 동안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 고행을 함께 겪어낸 뒤 팀원들과 무척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2002 월드컵 당시 온국민이 하나 된 듯한 기분에 빠져 있던 것도 마찬가지다. 의례의 바깥에 있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함이 의례 참여자들 안에 형성된다.
어찌보면 명절 의식이 의미를 잃었던 것은 의식 자체를 신성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사라지면서 의례 본연의 기능이 사라진, 껍데기만 남은 행위에 그치면서 초래되었을 수도 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기이한 집착이 의례를 신성하게 격상시킨다. 과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복잡한 절차와 독특한 행위들을 충실히 지켜낸 의례들이 오래 살아남고 그 안에 푹 빠졌던 이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요즘 시대에는 어떤 것들을 의례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북클럽 오리진’이 떠올랐다.^^ 지난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책모임이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하는 일종의 종교 같다고 말했는데, 생각할수록 그렇다. 한 달에 한 번씩, 특정 시간대의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서 특정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모임장에 가서 일정한 순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가볍게 저녁을 먹으면서 뒷풀이를 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게 하나의 의례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 깊숙히 빠져있었을 때 불안에서 빠져나오고 함께 하는 이들과 다른 시공으로 이동한 기분이 들고 모임이 끝난 뒤에는 다가올 한 달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다시 처음 떠올렸던 저자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의례가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져진 의례를 대체할 수 있을까.’ 북클럽 오리진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
우리 함께 새로운 의례의 기원(origin)이 되어 보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