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쓴 것이 곧 당신이다"
2503 시즌 - 책 <쓰기의 미래> 독후감
2025-05-14 22:54
전체공개
‘나는 왜 쓰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쓰기가 본격적으로 삶에 들어온 것은 대학 시절 취업 준비를 앞두고 일기를 쓰면서부터였다. 일기라기보다는 감정 쓰레기통에 가까웠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회에 안착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숨쉴 구멍이 필요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속내를 쏟을 곳을 찾던 중 손바닥만한 노트 한 권을 장만했다. 가볍게 외출할 때도 노트만큼은 꼭 챙겨나왔고, 혼자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발견하면 자리잡고 앉아 오래오래 쓰곤 했다. 복잡한 생각도 쓰다보면 명료해졌고, 가뿐한 마음으로 노트를 덮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쓰는 일이 지속되다보니 발견하게 된 사실, 바로 인생을 한 편의 이야기로 이해하게 된 점이다. 누구에게는 실패와 좌절, 낙오와 도태로 보일 수 있고, 가끔 한발짝 떨어져나와 세상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나조차 흠칫 놀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조금씩 용기 낼 수 있었던 건 긴 시간 쓰면서 이해하고 발견한 삶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흠결이 없어서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발버둥치는 자신이 (부끄럽지만^^) 사랑스러웠다. 자기 우물에 갇힌 정신승리일 수 있지만 우물벽이야 조금씩 넓혀가면 되는 거니깐.
이같은 개인적 쓰기 경험에 비출 때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에 제시된 사례들은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 있었다면 누구보다 공감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영어 교과를 담당했고, 쓰기 교육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과목이기에 성적을 매기는 데 엄청난 주의가 요구됐고, 특히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기 힘든 쓰기 과제는 최종 점수를 공개하기 전까지 강박적으로 평가 내용을 검토하고 피드백을 달았다. ‘과정 평가’ 비중이 확대되면서 글을 쓰기 위한 모든 경험이 평가 대상이 됐다. 자료를 읽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프리라이팅으로 주제와 소재를 찾아 얼개를 잡고 글을 쓴 뒤 퇴고하고, 모든 과정 틈틈이 동료 및 교사 피드백이 있었고, 피드백마저도 평가대상이었다. 전문가의 도움에 편승하지 않도록 모든 과정은 수업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학생들은 수업 내내 숨이 막혔을 것 같다. 매 시간이 평가라니… 절대적으로 멋진 결과물보다는 학생들 개개인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비중을 두겠다는 목표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정작 배움의 핵심인 ‘쓰기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 같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AI 사용이 일상화된 요즘의 교실 현장은 어떨지 궁금하다. 교사일 때 겪은 가장 큰 기술 이슈는 번역기 사용이었다. 당시 파파고 번역 품질이 꽤 향상되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교과 선생님들과 논의하면서 내린 방법은 영어 학습에 유효한 방식으로 번역기를 활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표현하려는 내용을 먼저 스스로 영작한 뒤 파파고의 작업물과 대조하면서 어휘와 문장구성 등을 비교하도록 했다. 이 방식의 효력은 전적으로 학생들의 배움 의지와 태도에 달려 있었다. 교사가 샘플을 주면서 하나씩 방법을 시연해도, 학생들이 실제 영작할 때 그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특히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배움 하나하나에 집중할 만한 물리적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하다.
번역기는 영어 교과에 국한된 문제라지만, AI는 배움의 전 영역을 넘나든다. 안 그래도 사교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교육 현장이 AI 급물살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논의에 앞서 왜 배워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에 학생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쓰기’만큼 강력한 도구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대개 ‘쓰기’를 학교 교육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데, 평가와 맞물리는 순간 쓰기의 진정한 묘미를 맛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되려 쓰기에서 멀어지는 부작용이 평생 발목을 붙잡을 수도...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일상에 쓰기를 들이는 것의 재미와 효과를 맛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취준생 시절 답답함을 달래며 일기를 쓴 경험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처럼. 누구든 쉽고 가볍게 쓸 수 있는 소소한 활동들이 개발되고 제공되어야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문득 ‘오늘의 발견’에 담긴 큰 뜻을 알 것 같다.^^
책은 AI기반의 글쓰기 도구들에 대한 사례와 분석이 주를 이루지만, 책을 마무리한 뒤에 강렬히 남는 것은 저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인간의 글쓰기는 인간의 마음을 날카롭게 벼리고, 다른 사람과 이어 주는 마법검이다. 아무리 도우미로서의 AI가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그 검이 빛을 발하도록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책에서는 기술의 도움을 받았을 때보다 안 받았을 때, 더 나아가 키보드가 아니라 손으로 썼을 때 사람들이 더 자기 글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다. AI가 알고리즘에 따라 제시한 더 깔끔하고 간결한 표현보다, 자신이 표현하고픈 생각과 감정의 결에 부합하는 표현을 고수하라고 조언한다. 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그 결과물이 오롯이 자기에게서 나왔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오래 전 쓴 일기를 꺼내어 다시 읽는 것은 그 글이 감동적이고 훌륭해서가 아니다. 한때의 자기 일부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한발짝 내딛을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독자를 상정한 글은 어떨까. AI시대에는 어떤 기준으로 읽을 만한 작품을 가려낼 수 있을까. 앞선 흐름에서 볼 때 저자의 삶과 개성의 영향이 더욱 커질 것 같다. 작품과 창작자의 삶을 분리해서 바라봐야 하느냐는 논쟁에서 ‘분리할 수 없다’는 비중이 더 커지지 않을까. 모두가 글을 쓰고 책으로든, 온라인으로든 쉽게 출판할 수 있는 시대에 개개인의 고유한 삶을 지키는 일은 더 힘든 일이 될 것이지만, 그렇기에 더 귀해질 것이다. 특히 AI가 쓴 글, AI의 도움을 받아 쓴 글이 많아질 세계에서는 어떤 것이 더 '진짜'에 가까운지가 중요해질 것이고, 창작자 삶의 굴곡에서 빚어진 이야기는 더 큰 빛을 발할 것이다. 한강의 소설이 한 편의 이야기를 넘어 깊은 울림을 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댓글
결국 왜 쓰는가, 무엇 때문에 쓰는가를 질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기와 학교에서 써야 하는 작문, '오늘의 발견'에 올라오는 글은 무엇이 다를까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