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지능 패러다임

2403 시즌 - 책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woply
2024-04-21 10:21
전체공개


두껍지 않은 책.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솔직히 처음에는 기대가 전혀 없던 책이었다.

"인간만의 감성이 중요하다." 혹은 "인간 본질을 짚어내는 인간 고유의 통찰력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책은 지능에 대한 우리의 개념적 인식 체계를 혁신적으로 확장한다. 두 번을 읽고서야 저자가 설명하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를 포함한 더 큰 세계(멸망 후의 진짜 세상)가 있음을 처음 인식했을 때처럼 약간의 충격과 큰 기쁨이 동시에 느껴진다. 내가 살아있는 좁은 사고 체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카메라가 순식간에 주변 세계까지 비추는 줌-아웃의 경험이다.

지능에 대한 오해와 인공지능 패러다임에 대한 설명, 우리가 지금까지 문제를 해결해 왔던 방식 그리고 그 한계를 단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새로운 지능 패러다임에 어떤 태도와 이해를 가져야 하는지 설명한다. 흔히 보편 진리이며 그것이 스마트한 사고방식이라고 인식하는 우리의 과학적 사고는 사실 하나의 지능 패러다임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것은 과학 패러다임이며, 장점이 명확한 만큼 한계도 명확하다. 대조적으로 AI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나는 AI 패러다임이 설명하는 개념과 특징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것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충격이자, 가장 큰 기쁨이었다.

나 역시 과학 패러다임에 빠져 인생에 상당히 큰 변화를 결심하고 실행했던 적이 있다. 20대 시절 대부분을 마케팅일을 하며 살았다. 언제나 꿈은 사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마케팅은 꼭 필요한 비즈니스 기술이지만 사업의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만들지 못하면 요리 못하는 음식점 사장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생계를 내려놓고 1년간 소프트웨어 공부를 했다. 다행히 좋은 스타트업에 취업해서 백엔드 개발자로 1년을 일했다. 그리고 개발자를 그만두었다. 

많은 전략적 이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사업은 해야 할 것이 상당히 많고, 하나같이 중요한 것들인데 내가 그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즉, 사업도 하나의 복잡계 현상이자 문제 해결의 영역이며, AI 패러다임이 말하는 지능의 연결을 통해 문제 해결력을 확률적으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것을 언어 개념으로 정리할 수 없었다.(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저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걸 직접 이해하고, 다룰 수 없다면 통제할 수 없다는 과학 패러다임의 오류에 빠졌었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세상은 많은 영역이 빠르게 복잡계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많은 영역이 세분화 되고, 전문화됨과 동시에 상호작용의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간의 감정조차도 500년 전과 비교하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해졌다. 마치 256개의 컬러를 표현할 수 있었던 8비트 컬러 디스플레이가 발전을 거듭한 결과 현재는 1억 개 이상의 컬러를 표현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복잡한 현상에서 단 하나의 본질을 찾는 행위는 점점 불가능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 게다가 본질의 발견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의 인식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복잡계에서의 과학 패러다임은 자연스럽게 한계를 드러낸다.

AI 패러다임은 이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상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단순히 AI는 기계입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인간 고유의 존엄은 영원합니다!"의 주장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따른 기존 지능 시스템의 한계를 설명하면서 AI 패러다임의 특징이 왜 대안이 될 수 있는 요소인지 설명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이걸 알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지능 패러다임의 발전 과정에서 AI는 무자비한 괴물이 아니며, 다음 세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문자와 이미지를 기호 주의 인공지능의 한 종류로 활용하여 인류의 번영을 이끌어 왔듯이 AI 패러다임의 확률적 문제해결 능력은 복잡계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를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못지않게 저자가 강조하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지능에 대한 이해 확장'이 왜 중요한지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받은 충격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AI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지능의 활용 능력이 월등하게 상승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이 세상에는 수 많은 도구가 존재하고, 우리의 연결을 기다린다. 아직도 모든걸 직접 이해하고, 직접 조작하고, 직접 통제해야만 자신의 진짜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 같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 정도 사고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AI 패러다임은 제 2의 인지 혁명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맥락적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합리성의 정의가 변화하는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다. 

AI 패러다임이 보여주는 관계, 연결을 통한 목적 지향적 문제 해결 방식이 올바르게 동작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문제 해결을 하나의 요소로 봐야 한다. 마치 '먹는 거 까지가 운동이다'라고 말한 김종국의 명언과 같다. 먹는 것과 운동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정의하면, 운동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지식의 소유의 강박에서 벗어나 환경 안에서 유연하고 창발적으로 지식을 연결하고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연결이 지능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우리가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AI에 대한 '과학 패러다임식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확률적 태도를 이해하고, 동작 원리의 명확성을 장악하고 싶은 강박을 내려놓고, 연결 지능을 거부감 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 책을 읽은 내가, 그 전의 나에게 내려야 하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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