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소외 그리고 공존의 딜레마

2403 시즌 - 책 <프랑켄슈타인(필독) + 프랭키스슈타인 by 지넷 윈터슨(권장)>
woply
2024-05-1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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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이름 없는 괴물의 원망 섞인 말들과 좌절에 더 마음이 가면서, 생각난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이미 세상에 태어난 존재이며, 그렇지만 내던져져 있으며, 평범함이라는 말에 부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이들.

코피노, 이민자,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 장애가 있는 사람, 정신을 차려보니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사람, 성정체성이 단순하지 않은 사람, 너무 가난해서 모든 게 불행한 사람 등등

원한 적 없던 삶을 부여받은 이들에게 '공존'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언젠가 가장 아픈 방식으로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세상과 어울리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게 있으며, 공존이란 그것이 충족된 이들에게만 허락된 커뮤니티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나 자신이 한편으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이하게 달라 보였소."
(중략)
"몸은 흉측했고 덩치는 거대했소. 
이게 무슨 뜻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내 목적지는 어디일까? 
질문이 끝없이 떠올랐지만 답을 찾을 길이 없었소."
(중략)
"나는 비참하고 무기력하고 고독했소. 
내 처지에 대한 상징으로는 사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차례였소. 
내 보호자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사탄이 그러했듯 쓰라린 시샘 덩어리가 내 안에서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오."

- 164p, 165p 괴물과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대화 중 -

이름 없는 괴물이 펠릭스의 가족을 보며 꿈꿨던 인간다운 본성, 행복과 번영, 관계와 연대, 연민과 우정... 하지만 곧 괴물은 번민에 빠져 "내가 생명을 얻은 그날이 증오스럽다!"라며 울부짖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펠릭스 가족의 경멸은 참을 수 없는 비참함을 남겼다.

그날의 일이 차분한 슬픔이었다가, 다시 기대가 생겼다가, 이어서 격렬한 노여움을 느끼는 모습이 결코 괴물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창조자는 피조물이 무엇을 감내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피조물의 생애주기는 창조자의 의도 안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태어난 존재는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며 창조자의 영향력과 기대를 점차 벗어난다. 배우기도 하며, 버리기도 한다. 좋은 걸 배우고 나쁜 걸 버리기도 하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독립된 존재로서 자신이 살아야 할 세계를 인식하거나 새롭게 정의할 것이다.

문제는 기존 세상이 바라보고 인식하는 공감대가 태어난 존재를 평가하고 분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태어난 존재는 자신의 실존을 단단하게 세우기 전까지 자신의 시작점이자 자신의 존재가 머무는 사회, 문화적 필드에 의해 세상과의 상호작용 방식이 어느 정도 결정된다. 어쩌면 스스로 정의한 정체성보다 환경과 제약이 운명에 훨씬 더 많은 부분을 결정할 것이다. 태어난 존재가 누구인지, 본질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누가 탓하겠는가. 누군들 그러한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 안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괴물로 상징되는 수많은 소외된 이들에게 마음이 쓰이고 막연한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확대해 보자면 우리가 매 순간 만들어내는 결정과 영향들 역시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연민이 느껴지는 존재와 일상에서 수없이 만들어지는 의사결정의 영향력은 어느 선에서 구분될 수 있을까? 자의식을 가진 존재여야만 도덕과 윤리의 문제가 적용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결과는 괜찮을 것일까...

빅터가 만든 피조물을 더 넓게 보편화해 보자. 자의식을 가진 존재를 직접 창조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이를테면, 인공지능 발전에 아주 간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과학적 발견의 한 조각 또는 문화적 영향력) 딜레마가 생긴다.

우리가 매 순간 만들어내는 것들이 어딘가에서 부작용을 만든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인가?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이 있다고 하여 시도하면 안되는 것인가? 오직 가능성만 내포하고 있는 작은 사건이 어떻게 세상에 작용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아가 이 모든 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발전시켜 온 인류의 번영 방식이 아니었던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가진다면 그것은 잠재적 재앙인가?

인간이 가진 오만함은 경계해야 하지만, 큰 변화의 방향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개인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다"라고 단언하고 싶지만, 내심 정말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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