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한 의 위선과 괴리.

2403 시즌 - 책 <프랑켄슈타인(필독) + 프랭키스슈타인 by 지넷 윈터슨(권장)>
그레잇
2024-05-16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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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미덕이나 선을 표면적, 외관상으로 보여주거나 실제적, 내면적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을 말한다.
*괴리, 서로 어그러져 동떨어지다.


작가 메리 셸리(1797-1851)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프랑켄슈타인』을 착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시험해 보지 않은 정신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윤리적 태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독자를 지키게 하지 않으면서, 가족의 애정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보편적 미덕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선에서 머무르려고 노력했다. 

나는 메리 쉘리가 말한 위의 입장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주의적 시선과 태도에서 일어나는 위선과 괴리를 지적하고 싶다. 또한 자연을 관찰하는 인간의 그릇된 선험적 태도에서 보이는 나약함과 이를 벗어나는 용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싶다.

이야기가 시작하는 로버트 왈튼과 사빌 부인의 편지를 보자. 편지는 새로운 삶을 탐험하는 로버트 왈튼과 삶이 귀속되어 있는 사빌 부인(누이, 고향)은 서로 교차하고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경험과 생각은 편지를 통해 과거의 것으로 다시 도배되고 만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표면적인 모습과 괴리되는 과거의 경험에서 미지의 세계에서 얻어지는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즉 ‘과거의 경험이 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괴리에서 인간은 괴롭기 시작한다. 아래의 사색에서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기분이 좋다. 불행이 내 마음을 더럽히기 전이었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는 밝은 꿈을 나 자신에 대한 우울하고 편협한 사념으로 바꿔 놓기 전이었다 ... 내 운명을 덮쳐 버린 그 격정의 탄생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그 격정이 마치 계곡물처럼 무심코 지나칠 만한, 거의 잊힌 샘에서 생겨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47p.


대학교에서 그의 운명이 되는 자연철학,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의 ‘관점’이 어쩌면 탐험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의 대학교에서의 교육이 그의 고향 즉 ‘선의 기준’이라는 원초적인 개념을 건들게 되면서 괴리에 휩쓸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래의 문답에서 생각해 본다.

1. 대학교의 탐험에서 만들어지는 경험들 

크렘페 교수 : “현대 철학자들이 알아낸 지식의 기반은 대부분 고대 학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빚지고 있지. ... 천재들의 노고란 비록 목표는 잘못되었더라고 결국에는 인류에게 이로운 일을 하기 마련이라네

빅터 : 나는 교수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화학자들에 대해 가졌던 모든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61p.
   
“발트만 교수님은 나를 실험실로 데려가서 여러 장치의 쓰임과 내가 어떤 도구를 마련해야 할지 알려 주었다. ... 부탁드렸던 도서 목록도 작성해 주었다 ... 잊지 못할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날이 내 운명을 결정했다.” 62p

화학 분야에 몰두했다. ... 나는 발트만 교수가 진정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63p.

   
2. 빅터의 내면의 고향, 선의 기준(괴리의 촉발)

(빅터는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초현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꿈속에서 ... 엘리자베스가 잉골슈타트 거리에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그녀를 꼭 안았지만 키스를 하는 순간 시체처럼 시퍼렇게 변해 버렸다.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더니 어느새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껴안고 있었다. 수의가 어머니의 몸을 감쌌고 여러 겹의 플란넬 철 사이로 무덤 벌레가 기어다녔다. 나는 겁에 질린 채 벌떡 일어났다. 75~76p

“오랫동안 나의 양식이자 즐거운 안식처였던 그 꿈틀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 버렸고 내 기대도 철저하게 무너졌다.77p”

   
3. 괴리의 실리적 과정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쓸쓸한 거리를 걸어가네 (원초아id)
한번 스윽 돌아보고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사람처럼 (자아)
걷고 또 걸어가네 그 끔찍한 악마가 뒤를 바짝 쫓고 있을까 봐” (초자아) 78p

   
4. 괴리와 외면 그리고 도피

- 친구 앙리 클레르발과 만남 
   = 
   순간적으로 공포와 불운 따위는 사라져 버렸다. 
   한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잔잔하고 평온한 기쁨이 갑자기 밀려왔다. 79p

   
-엘리자베스 라벤자의 편지
 =
 아, 사랑스러운 엘리자베스! 바로 답장을 해서 가족들의 근심을 덜어 줘야겠어! 85-91p

“클레르발의 관대함과 애정이 내 몸을 녹였고 내 감각을 활짤 열어 놓았다. 나는 그제야 모든 이를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사랑받았던, 슬퍼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던 몇 년 전의 나로 되돌아갔다. 행복해지면 생명이 없는 자연도 내게 최고의 기쁨을 선사하게 된다.” 96p

  
나는 처음 이야기의 발단 부분에서 작가가 말했던 가족애와 윤리적 태도에서 가족애(집단주의)를 모든 사건의 발단으로 지적하고 싶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관점과 태도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탐험’하는 대학 시절 속에서 과거의 고향에서 만들어진 집단주의적 ‘틀(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고의 결과물인 그 가엾은 것’은 탐험의 결과이면서 틀이 무너질지 모르는 무섭고 위험한 대상이 되었다. 빅터의 관점이 가족, 친구와 대학으로 이동하면서 보여주는 심리적 변화처럼 빅터는 한 문명이 정착해서 살아가야 할 집단 제도-가장 작은 가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무한한 변화와 그토록 원했던 ‘새로운 종의 아버지’라는 탐험까지도 ‘악마’로 만들어야 했다. 

이 글이 쓰여진 보수적인 영국과 메리 셸리의 낭만주의-윤리적 문제는 배제한다.-가 현재 나에게 질문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작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932)가 “낭만주의의 대가이면서 왜 낭만주의를 선택했는가?”에 대하여 질문해 본 적이 있다. 많은 시각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내가 알게 된 사실은 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에서 희생된 2만 5천 명의 소식에서 전해지는 공포와 혼란에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랑의 용기였다. 신 앞에 무릎 꿇던 괴테가 사람에게 뛰어든 인본주의는 사랑이라는 용기였다. (실제 괴테는 화석 연구 같은 무수한 연구를 했다.) 격렬한 반항이 문학에 젖어 들어 인간의 마음과 자연으로 연결되어 가면서 과학 또한 그곳에 함께 자리했다. 

탐험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박사생 시절 지도 교수의 질문처럼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탐험의 시작이지 않을까? 오늘의 프랑켄슈타인은 탐험과 용기를 주제로 내 기억 속에 젖어있는 보편적인 것들에 대해 저항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괴물처럼 드어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해 편견 없이 몸을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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