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잘 만들어진 SF에서 마주치는 이중성들에 대해
자장가
2024-05-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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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의 배경을 다른 소설로 설명하고 있는 프랭키스슈타인까지 읽어볼 수 있었으니 정말 제대로 읽게 되었다.
독후감으로 어떤 내용을 적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SF라는 장르의 소설(혹은 영화, 이야기)에서 마주치는 '이중성'에 대해 몇 가지 정리해 보려고 한다.
[현실과 현실 아닌 것]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도, 그 이야기를 읽는(혹은 듣는, 보는) 사람도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과 너무 멀어지면 곤란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떨어진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SF는 '시대', '장소', '기술'과 같이 이야기의 배경을 구성하는 부분에서 '사실'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양해한 후에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이 아닌 것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여전히 '현실'에 닿아 있어야 한다. SF에서 동일하게 지켜지는 현실은 그 속에 등장하는 주체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사회가 구성되고 움직이는 방식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변수들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일 수 있는 것, 그것이 SF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자 이중성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현재 시점에서 보았을 때 무척이나 허술하다. 아마 소설이 쓰여진 200년 전에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알게 된 비참한 세상의 이야기, 오해와 차별 속에서 느끼는 분노는 그 시대의 현실과 닿아 있었을 것이고 인간의 본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납득'된다.
이 소설의 중심 주제는 폭력과 복수로 점철된 괴물의 사연 많은 인생은 그가 처한 사회 상황의 직접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 메리 셸리는 소설이라는 수단을 통해 러다이트 운동이 산업혁명기에 부상하던 영국 노동자 계급의 잔인한 폭력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용인할 수 없는 노동자 처우를 놓고 시작된 합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반발이었음을 암시한 것이다._프랑켄슈타인의 번역자 오수원의 해제 중
[인간으로의 인정]
과학과 기술을 통해 사람 혹은 사람을 닮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서, 그것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처럼 괴물로 표현되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생각하고 욕망하는 것에서 사람들과 차이가 없는 경우부터, 영화 A.I.의 데이빗, 다른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로이베티,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클라라와 같이 외모도 사람과 차이가 없으면서, 감정을 가지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혹은 레프리칸트)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위험하거나 불편하거나 힘든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혹은 잃어버린 사람을 대신하기 위해, 사람과 닮은 '기계'를 만들어 내고, 그 기계가 사람처럼 판단해서 스스로 그 일들을 해주기를 원한다. 그 일이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종류의 일인 경우에 닮음에 대한 요구는 더 크게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사람으로 대우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사람과 같은 자의식과 욕구를 가지게 되는 경우에도. 그래서 그들은 동화같은 결말을 맺거나(데이빗), 제한된 수명이 다해 멈추거나(로이베티), 버려지거나(클라라), 살아남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게 된다(프랑켄슈타인).
인간이 가진 '자의식'과 '욕망'은 생명체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무엇은 아직까지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구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진 것이 어떠한 '우연'에 의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만든 무엇에 그런 의식이 깃드는 우연도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예, 다른 인종을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것처럼, 사람의 피조물을 동등한 무엇으로 인정해야 할 시간이 오게 될 것인가 궁금하다. 감정적인 인정은 각 개인의 영역에서 해소되겠지만, 소유권, 선거권과 같은 제도적인 영역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밤새워 그의 곁을 지킵니다. 기다리면서.
그렇게 그는 죽어요. 그의 가족이 집을 청소하러 오죠. 일라이자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유감입니다.
그들은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합니다. 그들에게서 그녀는 다소 골칫거리에요. 결국 그의 아들이 이베이에 내다 팔기로 결정합니다.
[인간의 문제점에 대해서]
기계가 인간의 지성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인간이 가진 이중성이 그 기계 혹은 창조물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인가?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고, 합리적이면서 비합리적이고, 창조적이면서 파괴적이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는 당연하고, 동일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이러한 이중성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수용하고 있다.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과 같은 학문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설명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에서도 이러한 이중성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어요. 인간이란 정말 그토록 강하고 훌륭한 덕성을 갖추었으며 아름다운데, 동시에 어떻게 그토록 사악하고 부도덕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안드로이드에게 사람들과 같이 자의식이 생겨나고, '자신'의 '욕구'를 맞추려고 한다면 어떤 상황이 생겨날까? 자의식과 욕구로 인해 생긴 이중성을 창조물 역시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블레이드러너의 신형 레플리칸트 Nexus 6인 로이베티는 의도적으로 제한된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을 제작한 타이렐 박사가 있는 지구로 잠입한다. 사람을 닮는다는 것은, 사람의 이중성 그 중에서도 생존과 번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살해했던 사람의 이중성도 닮는다는 것이 아닐까? 로봇3원칙은 자의식을 가진 주체에게도 문제없이 적용될 수 있을까?
제정신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빠져나가는 데 필요한 실이다. 실이 끊어지거나 풀려 버리면 어떤 지도로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음울한 터널이 우리 앞에 이어지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우리 자신의 얼굴을 덮어쓴 짐승이다.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혹은 인간이 가진 약점을 지니지 않은 '초합리적'인 기계, 인공지능, 창조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자의식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욕구가 없으니 파괴도 없을 것인가? 아니면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과 같이 인간에게 재앙이 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 지구를 다스리는 이 시대는 나빳던 옛 시절이 될 것이고, 자연 보호 구역처럼 복원될 것이다. 인공 지능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쇼핑몰이나 자동차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이미 1965년에 굿은 지능 폭발에 대해 썼어. 인공 지능 폭발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 발명품'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도 그 사람이었어. 선견지명이 대단하지. ... 최초의 초지능 기계는 인간이 만들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다. 그 기계가 자신을 제어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줄 만큼 고분고분하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소설은 미래에 대해 직접 결론짓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인간들은 욕구를 제어하기 보다는 충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끊임없이 그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래(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생명 유형 3: 완전한 자가 설계 등)가 유토피아가 될 지 디스토피아가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프랭키슈타인에서 빅터는 인류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게 무슨 뜻이야. 뭘 해결하냐니?
인류를 위해 뭘 하냐고. 우리의 모든 과오, 허영, 우매, 편견, 잔인...... 강화된 인간이든, 초인간이든, 업로드된 인간이든, 영원한 인간이든 뭐든 간에, 그 모든 개짓거리가 같이 딸려 오는 걸 너는 진심으로 원하는 거냐?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우리는 아직 바다에서 뭍으로 겨우 기어 나가는 단계에 있어. 네가 원하는 미래를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우리가 언제 준비된 적이 있었나? 빅터가 말했다. 진보는 우연의 연속, 허둥거리다 저지른 실수, 예기지 못한 결과로 이루어지지. 그래서 뭐?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조차 모르는데. 그냥 앞으로 나아갈 뿐이야.
사족을 붙이자면, 대학 시절에 내 컴퓨터에 '레이첼'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레이첼'은 블레이드러너에서 타이렐 박사가 만든 레프리칸트 중 하나이다. 박사가 죽은 조카의 기억을 이식해서 레이첼은 자신이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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