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깊어진 삶에 대한 이야기
늘보리
2024-04-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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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글로 풀어낼수록 거창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미천한 경험에서 나오는 껍데기같은 말들 같았다. 모리 교수의 주옥 같은 말들은 결국 각자가 삶에서 마찰과 부대낌을 겪어내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닦아나가야 할 것들이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아끼고 챙겨나가려 해도, 우리가 살아나가는 사회는, 시스템은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수많은 상황의 수많은 선택들 사이에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지켜나가야 하는 마음은 결국 사랑. ‘사랑이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나의 선택들에서 사랑이 이겼던 적은 얼마나 될까.
“자기 문화를 만들어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경쟁에 참여해서 우위에 서도록 압박한다. 모두들 무한경쟁 시스템에 신물이 난다고 하지만, 조금이나마 우위를 점할 기회가 포착되면 기류에 올라타기를 거부하기란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자기 문화를 만드는 일은 생각할 땐 설레지만 그 안에 뛰어든 다음에는 엄청난 무게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선택의 기준(사랑 같은 것들…)이 너무 거창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거나, 많은 상상력을 요하기도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균형감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기울거나, 전체를 못 보고 부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외골수가 될 수도 있다. 모리 교수는 “열린 마음만이 자네를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동등하게 만들어 줄 거야.”라고 말한다. 사랑, 열린 마음, 동등한 관계… 멋진 말들이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운 이 가치들을 어떻게 하면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 좋은 동료들도!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고민할 때, 살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삶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부터 떠올리게 된다. 자동적으로 구체적인 것들(멋진 곳을 여행하고, 좋은 책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일 등)을 떠올리는데, 막상 실천으로 이어가다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나 반응에 아쉽고 서운한 마음만 한가득 든다. 궁금했던 곳에 여행을 갔는데 생각만큼 감흥이 없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대화가 너무 뻔하거나 사소한 것(특히 비난에 가까운 것들)으로 이어져 실망하기도 한다. 삶을 가치 있는 것들로 채우려는 욕심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는 것 같지만, ‘어떻게 그 마음을 지켜갈 것인지' 대해서는 충분히 말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서늘한 경고같은 것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책을 며칠에 걸쳐 천천히 읽으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할까.’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내가 마지막날에 꼭 포함시키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이다. 조용한 산책,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읽거나 나누는 것, 좋은 사람들과 함께 요리하고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 놀랍게도 모리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저자가 모리 교수가 딱 하루만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평범해서 놀라는 대목이 놀랍기도 했다. 이 평범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사소하게 흘려보내지 않게 해주는 것이, 그 마음가짐을 지켜주는 것이 죽음에 대한 생각인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좀 더 자유롭고 너그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난 후회들로 조급해지고 화가 나고 슬픔에 빠진 채 생을 마무리하고 있지 않나. 죽음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품어야 하는 이유다.
드라마 D.P.로 백상 예술 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을 들으면서 매우 공감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에게, 고개를 조금만 돌려 창밖 화단을 보면 피어있는 빨간꽃이 할머니라고, 죽음은 존재 양식의 변화라고, 아빠도 곧 할머니 곁으로 가게 될 거라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남은 시간을 잘 보내자고 건넨다. 몇 년 전 주말 사이 갑작스런 사고로 동료를 잃은 뒤, 여기저기 피어있는 하얀 풀꽃을 보면 그녀를 떠올리곤 했다. 책 말미에 등장하는 작은 파도 이야기. 앞서 나간 파도들이 해변에 부딪쳐 사라지는 걸 보고 두려워하는 작은 파도에게 뒤이어 오는 파도가 던진 말. ‘너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의 일부’라는 말. 우리 존재가 유일무이한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 대단한 사람이 되고, 세상에 거창한 무언가를 남겨야만 한다는 강박은 우리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든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죽음은 그저 피해야 하고, 늦춰야 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서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고, 나의 죽음이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죽음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갖는 것과 이런 믿음을 갖고 죽음을 직면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겠지만.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어찌 보면 내 인생에서 더 힘들었던 일은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일이었던 것 같다. 사랑을 받아들이면 그에 상응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자신도 용기도 없으니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 같다.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결국 의무가 된다. 혹은 일정한 보상을 바라는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동네를 산책하다가 잠시 근무했던 학교의 학생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보고 싶었다고, 많이 떠올렸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의 다정한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현재의 내가 처한 지점이 가늠됐다. 사랑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의심도 편견도 없이!
책에서 내내 펼쳐지는 모리 교수의 주옥 같은 말들의 밀도가 높아서,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한참을 멈춰서 되새김질해야 했다. 오리엔테이션부터 주제별 수업, 졸업으로 이어지면서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심리적 경험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살면서 좋은 스승을 만나고 인연을 이어가는 일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미치 앨봄의 질문(을 가장한 자랑), ‘당신에게는 이런 스승이 있는가'가 참 부럽게 느껴졌고, 반대로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묻게 되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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