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Soki
2024-05-2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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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영화를 통해 먼저 접하게 된 프랑켄슈타인의 존재. 영화에서는 괴짜 과학자가 퀼팅하듯이 여러 부품들을 조합하고 조립해서 괴상해 보이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 성인이 되어 제대로 고전을 다시 읽어보니 사뭇 다르다. 아니 완전히 다르다. 책을 통해 상상으로 그려지는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은 영화에서처럼 우스꽝스러운 발명품이 아닌, 인간의 삶과 과학, 윤리관에 대한 깊고도 무거운 질문들을 쏟아낸다.
첫 번째, 생명 창조의 문제.
우리 인간에게 진정 생명을 창조한 권리가 있을까? 의수, 의족에서 시작한 의료과학기술은 신체의 물리적 부분들을 대다수 대체할 수 있고, 유전자 기술을 통해 동식물의 생명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제 과학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해 주는 중립적 도구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많이 발전해 왔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인식과 도덕적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셰인 덴슨(Shane Denson)의 "프랑켄슈타인, 생명 윤리 및 기술적 되돌릴 수 없음"이라는 논문에서 보면, "기술적 돌이킬 수 없음"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한 번 기술이 도입되면 역사적으로 되돌릴 수 없으며 인간의 주체성을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특히나 AI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매우 설득력 있는 개념이다. 정답을 찾기 힘들고 시대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작품 해설에서 메리 셸리는 단순히 과학이 낳을 수 있는 파국에 대해 경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가 내세우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치의 허구성을 폭로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단순히 과학과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재난을 경고하는 것을 넘어서, 당시 사회가 내세우는 이성과 합리성의 불완전함과 그것이 초래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당시의 계몽주의의 이성 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감정과 윤리가 무시된 이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최근 현대사회의 AI와 관련된 이성적 추구와 감정의 경계선에 대한 민감한 논쟁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보여 골똘히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에 대한 지속적인 딥러닝은 인간지능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통해 구분하기 어려운 이성과 감정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작품 해설에서 괴물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이념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성적 소수자, 외국인 이주 노동자..)이라고도 말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은 이유도 배경도 없이 본인에게 쏟아지는 증오와 혐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자기 자식을 구해준 사람을 죽이려고 한 그 시골 사람은 왜 증오하지 않는 거요? 나, 흉측하고 버림받는 놈은 멸시 당하고 걷어 차이고 짓밟혀도 되는 괴물이란 말이지." 그런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든다. 바로 장애인, 장애우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과 자본주의에 기반한 지배적 가치 때문이다. 공공기관, 정부기관은 조금씩 장애인에 대한 처우, 편의 시설들을 과거보다 높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사기업에 가면 이러한 희망은 여전히 요원한 꿈에 가깝다. 이러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어디 장애인 뿐이겠는가?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정신 의학적 우울증과 분열증, 공황 장애 등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히키코모리(틀어박인 사람들) 인구는 어느덧 150만 명에 이르고, 우리나라 역시 은둔형 외톨이 인구를 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괴물은 과연 누가 창조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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